[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그 봄날 '꽃밭에서'를 부르던 시인

입력 2023-05-23 18:11   수정 2023-05-24 00:11


갑자기 오른 단골집 칼국수값과 시급 9160원과 암호화폐 열풍과 등에 칼 꽂는 배신의 정치가 난무하는데, 영산홍은 어쩌자고 저토록 무구한 채로 피어난단 말인가? 모란과 작약이 다퉈 꽃을 피우고, 버드나무 가지는 실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리고, 먼 산 뻐꾸기 소리에 저무는 고운 봄날의 그리움과 슬픔과 허무주의가 나는 싫다.

아니, 땅에 뿔냉이와 씀바귀가 파랗게 돋고 공중에는 꽃가루 분분한 때 공연히 싱숭생숭해지는 내 연약함이 싫다. 자드락길에 서면 무슨 사무침이 그리 많아 가슴이 무너지고, 나는 살림 작파하고 떠나고 싶어지는 것일까.
16세 때 처음 만난 박정만 시인
불현듯 서울 송월동에 주소를 둔 한 잡지사를 찾아갔던 아득한 기억의 조각을 꺼낸다. 당시 나는 16세,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볼펜 떨어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릴 만큼 삼엄하던 편집실의 고요함에 압도당했다. 누군가 다가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던가. 내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고 아는 척을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국 학생들이 애독하던 그 잡지에 시와 단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며 활동한 터라 내 이름을 알았을 테다. 누군가 다가와 지금은 마감 때라 다들 정신이 없으니, 나중에 소주 한잔하자고 했다. 나는 민망한 기분으로 그 사무실을 등지고 나왔는데, 소주 한잔하자던 이가 시인 박정만이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이듬해 봄날 문인 선배 대여섯 명과 우이동 계곡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박정만을 비롯해 번역가 이윤기, 시인 이세룡,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소설가 두엇이 어울렸다. 나는 20대고, 다른 이들은 서른서넛이었으니 다들 쑥갓처럼 싱그러웠을 나이다. 막걸리 몇 잔이 돌고 봄날의 난만함에 젖은 채 고운 노래를 불렀는데, 박정만의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정훈희, ‘꽃밭에서’)

시인의 가창력에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그 고운 노래를 모른 채 산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가수 정훈희가 1979년 칠레 가요제에서 불러 상을 받은 노래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대단한 인생의 공훈을 구한다고 저 아름다운 노래도 모른 채 살았을까.

그 무렵 나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박정만의 첫 시집 원고를 받아 가장 먼저 읽는 기쁨을 누렸다. “꽃 피어라, 꽃만 피어라,/ 꽃 노다지로 한목숨 주어버리자./ 동편 꽃도 서편 꽃도/ 참벌 나는 하늘의 저녁참에 주어버리자.”(박정만, ‘앵초꽃 사랑’)

그의 시에는 사랑과 슬픔의 가락이 있고, 그 유장한 가락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전통 서정의 가장 서늘한 경지에 가 닿은 시 편편마다 나는 감탄했다. 시와 술과 벗을 좋아할 뿐 생활인으로서는 무력했던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백수로 떠돌았다.
'한수산 필화 사건'으로 큰 고초
내가 퇴사한 출판사의 후임 편집장으로 박정만이 들어가고, 얼마 뒤 한수산 작가의 필화 사건에 엮여 고초를 당한 소식이 문단에 파다하게 퍼졌다. 느지막한 출근길에 갑자기 나타난 기관원 몇이 그의 팔짱을 낀 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서빙고 지하실에서 며칠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고 각서를 쓴 뒤 풀려났다고 한다.

쉼 없이 매질을 당하며 죄를 불라는 강요에 동대문운동장 공중화장실에 ‘OOO은 살인마다!’라고 끼적인 걸 자백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평생 시밖에 모르던 시인은 권력 기관의 무법한 폭력에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채로 무너졌다.

그는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 종종 들렀다. 우리는 바둑 한두 판을 두고 복기를 하거나 두부 두루치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두 병쯤 마시고 헤어졌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가난을 핑계 삼아 비굴한 처신을 한 적이 없었다. 두어 번 술값이라고 용돈을 호주머니에 넣어 드렸는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내 인생은 너무나 형편없었어./ 형편이라는 게 있을 수 없었으니까./ 자, 보라구, 난 거지야./ 형편이라는 게 있을 까닭이 없지./ 저쪽 종이, 그것이 내 삶을 가져다준 물가야./ 철저하게 버림받고 철저하게 더럽혀졌지./ 말해서 뭘해. 더러운 것은 난데./ 나는 정말 말하겠어. 조심스럽게./ 인간을 사랑하며 살려고 했지. 왜냐./ 내가 인간이니까. 안 됐고 더러웠어.”(박정만, ‘형편없는 시’)

인간을 사랑하며 살려고 했지, 라는 시구에 나는 먹먹해진다. 무구한 이들을 짓밟는 세상에서 인간을 사랑하며 살려는 꿈만큼 야무지고 화사한 기획이 또 있을까.
두어 달 동안 시 300여 편 쏟아내
나는 책 판매대금을 문방구 어음으로 결제하는 서점과 실랑이를 하고, 박정만은 늙은 소년같이 하염없는 시인의 길을 가는 동안 야만의 1980년대는 흘러갔다. 아, 시인은 어쩌라고 저토록 무구한 것인가.

그는 통음한 뒤 환각에 들고 환청의 황홀 속에서 시를 300여 편쯤 써냈다고 한다. 원고 말미엔 시를 쓴 날짜와 시각이 적혀 있는데, 초 단위 간격을 두고 시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생산이었다. 평생 쓴 것보다 더 많은 시를 두어 달 동안 다 쏟아내고, 서울올림픽 폐막식 축제가 벌어지던 시각에 세상에서 가장 무구하고 가난한 시인은 서울의 한 반지하방 양변기 위에서 눈을 감은 채 열반했다.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품은 서정시 몇 편을 쓰며 살다가 세상의 무례함에 상처를 받고, 술병과 마음의 병이 뼛속까지 깊어져 시인은 솜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우주 너머로 사라졌다. 박정만. 43세. 전북 정읍생. 이번 주말에는 시인이 어느 봄날 나들이에서 ‘꽃밭에서’를 불렀던 그곳이나 더듬어 찾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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