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집중하면 이룰 수 있다

입력 2023-05-30 13:22   수정 2023-05-30 13:23

아버지가 두 동강 난 지팡이를 든 채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변호사 사무실에 들른다고 외출했던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난 채 귀가해 방문을 굳게 잠갔다. 이튿날 휴일 새벽에 어머니가 깨워 일어나자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했다. 차에 탄 아버지가 수주면(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지금은 무릉도원 면으로 바뀌었다)으로 가자고 했다. 구룡산 쪽으로 길을 들어서라고 할 때에서야 십수 년 전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채석 회사 현장임을 알았다. 험준한 임도(林道)를 한참 따라 오르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가 멀리 큰 바위 옆을 가리키며 장비를 챙겨 올라가라 했다.

아버지 말이 들릴 만큼 떨어진 산길을 힘겹게 올라 바위에 다다르자 벼락 맞은 감태나무가 보이냐?”고 물었다. 줄기에 검은 때가 끼었다고 해 그 이름을 얻었다는 감태나무는 나무가 단단해 도리깨로 쓰였다. 아버지가 지적한 감태나무는 쉽게 찾았다. 벼락을 맞으면 목숨을 연장해준다는 뜻의 연수목(延壽木)이다. 벼락 맞아 나무가 터진 부위가 용의 눈과 비슷하다고 해 용안목(龍眼木)이란 별명이 붙어 매우 길하게 여기는 나무라는 설명은 아버지가 돌아오는 길에 알려줬다. 아버지는 그 나무를 뿌리째 캐내라고 했다. 오래전에 봐둔 나무였다. 내가 한참 만에 캐온 감태나무를 꼼꼼하게 살핀 아버지는 절벽 아래로 가 물에 깨끗하게 씻었다.

어머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먹을 때 아버지가 불쑥 밖에 나와 먹는 밥이 왜 맛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네 어머니 정성도 있을 테고, 자연과 벗하니 분위기도 색다르고 상쾌한 것도 있어서일 게다. 밖에서는 음식 맛과 냄새가 잘 전달되기도 하지만 네 일상과 떨어져 오직 먹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아버지는 물 떨어지는 작은 폭포 아래 바위가 움푹 팬 곳을 가리키며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돌에 구멍을 뚫는다. 집중력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폭포를 보며 아버지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고사성어로 설명했다. 적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송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온다. 북송 때 장괴애(張乖崖)가 현령으로 있었을 때다. 그가 관아를 순찰할 때 관원이 급히 창고에서 뛰어나오자 조사하니 상투에서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창고에서 훔친 것이었다. 장괴애가 판결문에 적은 말이다. “하루에 1전이면 천일엔 천 전이요, 먹줄에 쓸려 나무가 잘리고 물방울이 돌에 떨어져 구멍이 뚫린다[繩鋸木斷 水滴穿石].” 관원이 엽전 한 닢 훔친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냐고 항변하자 장괴애는 그를 베어버렸다. 아버지는 폭포 물길이 흔들려 집중력을 잃으면 당연히 돌을 뚫지 못했을 거라고 부연했다. “오직 한 데로만 물길을 내보내려는 집중력의 소산이다. 물의 의지와 인내심, 한결같은 지구력으로 돌이 뚫린 거다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지팡이를 만드는 과정도 물이 바위를 뚫을 만큼이나 집중력이 요구되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몇 날을 물에 담갔다가 빼내 음지에서 또 몇 날을 말리고 그걸 다시 반복한 아버지는 두 달이나 지나서 뒤틀린 나무를 바로잡는 일을 또 몇 날이나 했다. 껍질을 벗긴 뒤 진흙을 발라 불에 그을리는 작업을 끝내고서야 주머니칼을 바꿔가며 깎아냈다.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석 달이나 걸려서야 아버지는 지팡이를 완성했다. “사람의 능력은 대부분 비슷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집중하면 이룰 수 있다. 생활의 장()과 연결을 끊고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일의 성패를 가른다라면서 아버지는 집중력은 버려야만 얻는다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인간은 생활의 장과 연결을 끊으면 당장의 불편을 못 견뎌내 한다면서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인성이고 힘주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소중한 습성이다는 점을 몇 번이나 말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화장장 직원이 지팡이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평생 써오신 거니 의족(義足)과 함께 태우라고 했다. 유골함을 돌려받을 때 직원이 타다남은 작은 단도(短刀)를 건네줬다. 지팡이에 숨긴 아버지의 호신 장구여서 유골함에 넣어 묻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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