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경제교사'가 인정한 천재…슈퍼스타는 희소성으로 돈 번다 [오현우의 듣는 사람]

입력 2023-06-01 17:54   수정 2023-08-11 22:01


“음악은 예술이다. 예술은 중요하고 희소하다. 중요하고 희소한 건 가치가 크다. 가치가 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내며 ‘오바마의 경제교사’로 불린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1960~2019)가 2014년 칼럼에 쓴 말이다. 크루거 교수는 2019년 3월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산업을 고찰한 서적을 남겼다. 같은 해 6월 선보인 <로코노믹스(Rockonomics)>다. 크루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콘텐츠산업 중 변화에 가장 민감한 음악산업에 녹아 있는 경제학 이론을 짚어냈다.

크루거 교수의 말처럼 음악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보상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음원과 음반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1999년 정점을 찍은 음원 저작권 매출은 계속 줄었다. 지난해 세계 음원 수익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0.06%에 불과했다. 음원 플랫폼 가입자 수가 6억 명을 넘기고, 올해 1~3월 재생 횟수가 1조 회에 달해도 수익은 적었다. 3개월간 세계 모든 사람이 음원을 감상한 시간이 96만 년에 달해도 보상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음원시장이 협소한 데 비해 팝스타들의 삶은 풍족해 보인다. 호화 주택에 거주하며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닌다. 어떻게 된 걸까. 답은 콘서트에 있다. 음원보다 공연으로 돈을 번다.

매달 구독료만 내면 무한정 들을 수 있는 음원에 비해 공연의 희소성이 훨씬 높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10센트를 음악 감상에 지출한다. 하지만 희소성이 있는 공연 수익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콘서트 티켓값 상승폭은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소비자물가 상승폭의 3배에 육박했고, 의료비 상승폭의 두 배에 달했다. VIP석은 대학교 등록금 상승폭을 웃돌았다.

크루거 교수는 이런 희소성을 가장 잘 이용한 가수로 테일러 스위프트(사진)를 꼽았다. 경제학 원리를 체화해 자기 수입을 극대화하는 데 탁월한 ‘경제 천재’로 봤다.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서 스위프트와 경제를 결합한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용어를 쓸 정도다. 스위프트는 여섯 번째 앨범 ‘레퓨테이션’을 발매하면서 처음 3주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차단했다. 음원 저작권료 수입이 음반 판매 수입보다 적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CD 구입이나 개별 음원 다운로드만 허용했다. 충성도가 높은 팬들은 음원 출시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다퉈 구매했다. 이 음반은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음반에 등극했다. 지급 의사에 따라 시장을 분할하는 ‘가격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위프트는 콘서트 티켓 재판매를 줄이기 위해 티켓을 한꺼번에 팔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쳐 분할 판매했다. 일정이 불확실하지만, 미리 구매한 팬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할 의사가 있는 팬들을 공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콘서트 티켓의 30%가 재판매 시장으로 흘러갔지만 2018년 펼쳐진 ‘레퓨테이션 투어’에서는 티켓의 3%만 재판매 시장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방식을 활용해 스위프트의 콘서트 티켓 평균 가격은 119.85달러를 기록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둔 투어다. 스위프트는 이 방식을 올해도 똑같이 적용했다. 지난해 새 음반 ‘미드나이츠’를 발매한 뒤 올해 3월부터 미국 전역 20개 도시에서 50여 회를 도는 ‘에라스 투어’를 시작했다. 이번 투어에도 사전 판매 기간을 지정했다. 지난해 11월 15일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240만 장을 판매, 처음으로 사전 판매 물량을 다 팔았다.

음악업계에선 스위프트가 올해 공연 수익으로 10억달러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공연 매출은 회당 1100만~1200만달러(블룸버그 추산)에 달한다. 미식축구장 등 최소 7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만 공연하니, 현재 추세라면 엘튼 존이 세운 투어 매출(8억달러) 기록도 넘길 전망이다.

스위프트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슈퍼스타’로 오랜 기간 자리 잡아서다. 상위 1%가 수익의 60%를 챙겨가는 승자독식 구조를 만들어 음악산업에서 생존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시장이 얼어붙은 4년간 스위프트는 트위터와 텀블러 등 SNS에서 팬들과 소통하며 관심을 끌었다. 뮤직비디오와 가사에는 고정 팬들만 이해할 수 있는 ‘이스터 에그’(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메시지)를 담았다. 유대 관계를 맺어 공연 수요를 비탄력적으로 바꾸려는 전략이었다. 멜리사 커니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위프트의 팬들은 불황에도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지갑을 연다”며 “대체재가 없고 수요도 극히 비탄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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