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구채' 발행 급증이 걱정되는 이유

입력 2023-06-13 17:56   수정 2023-06-14 00:15

‘위기 때일수록 자산과 자본은 회계 처리된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해진다.’

한때 글로벌 은행 위기 촉발 우려를 키운 올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회계적 관점에서 이런 교훈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SVB는 2019~2022년 기술산업 호황 때 급증한 예금을 대출보다 미국 국채 등 유가증권을 통해 운용하고 900억달러가 넘는 채권을 ‘만기보유증권’으로 회계 처리했다. 매 분기 시가 평가해야 하는 ‘단기매매증권’이나 ‘매도가능증권’과 달리 취득가액으로 계속 장부에 기입할 수 있는 계정과목이다. SVB가 작년 이후 금리 폭등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해도 만기보유증권은 평가손실을 잡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고객들의 예금 인출 증가로 SVB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을 매각하면서 손실이 현실화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장부에 잡히지 않았지만 SVB의 만기보유증권 ‘미실현 손실’이 170억달러에 달한다는 시장 분석이 확산했고 결국 예금 인출이 늘며 파산했다. 어떤 회계 처리를 하든 채권은 금리 급등기에 손실이 난다는 단순한 진리도 확인됐다.
자본임에도 위기 때 '의무 상환'
국내에선 작년 말 이후 ‘영구채’로 불리는 신종자본증권의 회계적 형식과 실질을 놓고 논란이 커졌다. 만기 30년 이상이고 5년마다 발행사가 조기 상환할 권리(콜옵션)를 보유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는 증권이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비율, 보험사의 신지급여력제도(K-ICS)비율, 증권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같은 재무건전성 지표 산정 때도 전액 자본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국내 신종자본증권은 정작 위기 때 자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작년 11월 흥국생명은 5억달러 규모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지 않기로 했다가 ‘5년 조기 상환 불문율’을 깼다는 투자자의 거센 반발을 받고 조기 상환했다. 흥국생명은 결국 유상증자해 자본 확충을 해야 했다.

올해 3월 크레디트스위스(CS) 파산 과정에서 코코본드(상각형 신종자본증권)가 전액 상각됐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올 4월 이후 콜옵션 행사 시점이 돌아오는 코코본드를 조기 상환하겠다고 속속 발표했다. 여유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줘 글로벌 은행 시스템 위기가 전이되는 걸 사전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시장 불안기에 조기 상환해야만 회사 건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권이 정말 자본일 수 있는가.
실제적인 자본 확충 필요
CS 파산 사태 이후 한동안 중단된 국내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2분기 들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은행·금융지주사는 이달에만 1조원어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 신한라이프, KB증권 등 보험·증권사를 넘어 SK텔레콤 같은 일반 기업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섰다.

금융시장 안정화의 방증일 수 있지만 ‘무늬만 자본 확충’이 다시 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절반 이상이 5년 뒤 조기 상환을 투자자에게 약속하고 발행된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신종자본증권은 다시 시장 불안기가 오면 혼란을 키우는 독이 될 공산이 높다. 기업과 금융회사는 잉여금 확대, 유상증자 등 실질적인 자본 확충 방안을 강구하고, 금융당국은 자본성을 과도하게 인정해 신종자본증권의 ‘과잉 발행’을 유발하는 측면이 없는지 제도 개선을 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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