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아이들이 어릴 때 일이다. 예술의전당 독주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막바지 연습과 리허설 때문에 집안일을 못 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밀린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독주회에 오셨던 집안 어른들께 차 한 잔 대접하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일어나는 어른들을 배웅하며 죄송하다고 하니 차마 눈을 못 맞추시는 듯했다.“아니다. 내가 미안하지. 좀 전까지 드레스 입고 근사하게 연주하던 게 선한데, 허둥지둥 물일 하는 뒷모습 보니 마음도 안 좋고 그래.”
무대 위 오케스트라는 18세기 오스트리아로, 20세기 러시아로,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한다. 관객들이 잠깐이나마 우리의 타임머신에 동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시대 고전에 대한 경외와 찬사의 의미로, 관객들은 작은 소음조차 내지 않으려 애쓰며 아무 때나 박수를 치지 않는다.
예술이 평범한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길 바라는 마음은 연주와 감상에 특정 관습을 만들었다. 일상의 고단함과 지루함을 제대로 정화하기 위해, 예술의 경험이 비일상의 영역에 머무르길 바란다. 그것이 예술이 주는 감동의 핵심이자 고유한 책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바흐, 모차르트에게도 음악은 직업이었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후원자들로부터 생계와 명성을 보장받으며 현실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음악을 구현했다. 예술이 현실과 철저히 유리된 ‘특별한 것’이라는 낭만적 신화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예술이 주는 비일상적 경험은 일상의 대척점에 있지 않다. 그 둘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스며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시대와 분리돼 독불장군처럼 우뚝 선 예술이란 무의미하다.
모든 시대의 음악가는 일상과 비일상, 직업인과 예술가를 넘나들며 역할극을 한다. 그 경계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경험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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