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칠판 교체에 287억 쓴 서울교육청

입력 2023-06-27 18:32   수정 2023-07-05 20:22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중학교 1학년 교실. 칠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형 LCD 화면이 놓여 있었다. 교사는 LCD 화면에 각종 이미지와 동영상을 띄워놓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서울 시내 학교에는 이처럼 ‘전자칠판’을 활용하는 교실이 적지 않다. 서울교육청이 ‘스마트 교실’ 사업의 일환으로 2021년 287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 시내 중학교 1학년 교실 2878곳에 전자칠판을 깔면서다. 하지만 전자칠판은 도입 당시부터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기존 빔프로젝터와 컴퓨터를 연결해 디지털 자료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칠판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전자칠판 가격은 대당 1000만원에 달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멀쩡한 칠판과 멀티미디어 기기가 있는데도 국민 혈세를 낭비한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는 작년 말 올해 서울교육청 예산을 심의하면서 전자칠판 예산 1590억6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예산 낭비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자칠판뿐 아니다. 일선 교육청에서 예산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입학준비금을 지원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10만원, 중·고등학생은 30만원이다. 경북교육청도 중·고교 신입생에게 20만원을 일괄 지원한다. 경남교육청은 지난해 초·중·고 학생과 교장·교감에게 노트북을 무상으로 나눠줬다. 일선 교육청에서는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지만 상당수는 선심성 사업이라는 지적이 많다.
페인트 벗겨지지도 않았는데…강원교육청, 학교 도색에 333억 뿌려
경남교육청은 지난해 영양사·상담교사·사서와 교장·교감 등에게 태블릿 기능이 있는 노트북을 무상 지급하려다 제동이 걸렸다. 경남도의회가 “예산 낭비 소지가 크다”고 지적하면서다. 경남교육청은 당초 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교원 3만1000여 명에게 노트북을 한 대씩 주려고 했다. 하지만 도의회는 교육청이 선정한 보급 대상자 중 3555명은 실제 교과 수업을 하지 않는 교원인 데다 9308대는 불필요한 지출이라고 판단했다. 노트북 구매단가도 교육청이 제시한 대당 150만원대에서 140만원대로 깎았다.
‘선심성’ 예산 남발하는 교육청
경남교육청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교육 현장에선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강원교육청은 2021년 추가경정예산에 관내 초·중·고교 658곳 전체를 대상으로 도색 사업 예산 333억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겨울철을 맞아 기온이 낮아지면서 327개 학교에 83억원만 집행되고 나머지는 불용 처리됐다. 그나마 도색작업을 한 327곳 중 42.2%인 138곳은 최근 5년 내 한 차례 도색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멀쩡한 페인트를 벗겨내고 다시 칠한 것이다.

서울교육청은 중학교 1학년 신입생에게 무상으로 태블릿PC를 나눠주고 있다.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상당액이 삭감됐지만 지난 4월 추경에선 292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되는 등 논란이 된 전자칠판 보급 사업도 재추진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1590억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방침이다.

입학준비금을 주는 교육청도 적지 않다. 광주교육청은 지난해부터 관내 초·중·고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초등학생은 10만원, 중·고등학생은 30만원씩을 나눠주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모든 중·고교 신입생에게 20만원을 지원한다.
학생 수 줄어도 교육청에 가는 돈 늘어
교육청들이 이처럼 돈을 ‘펑펑’ 쓰는 건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교육청에 들어오는 돈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학생 수 감소는 서울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6일 아침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에 있는 덕수고등학교(옛 덕수상고). 등교 시간대였지만 학교는 한산했다. 이 학교 학생 수는 특성화계열 3학년생 41명뿐이다. 2007년부터 인문계고와 특성화고가 통합운영됐지만 학생 수 감소와 특성화계열 인기 하락으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폐교’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문계고는 이미 지난해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새로 지은 학교로 이전했다. 남은 특성화계열은 내년에 경기상고와 통폐합된다. 1910년 문을 연 이 학교는 김동연 경기지사, 반장식 한국조폐공사 사장, 조재연 대법관,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 쟁쟁한 관료와 기업인을 다수 배출한 명문이다. 하지만 학생 수 감소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런 학교는 덕수고뿐 아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전국에서 총 3923개 공립학교가 문을 닫았다. 전남 839개, 경북 737개, 경남 585개 등이다. 서울에서도 2020년 3월 강서구 염강초교와 공진중학교가 폐교된 데 이어 지난 3월엔 광진구 화양초가 사라졌다.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7년 572만5060명이던 전국 초·중·고교생 수는 지난해 527만5054명으로 5년간 45만여 명(7.9%) 감소했다. 교육부는 2026년엔 500만 명 선이 붕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 예산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학생 수와 상관없이 현행법에 따라 내국세의 20.79%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자동 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지방재정교부금은 76조원으로, 2017년 48조6000억원보다 56% 급증했다.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이 기간 850만원에서 1442만원으로 뛰었다. 이렇다 보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업을 벌이거나 사업성을 철저히 따져보지 않은 채 헤프게 돈을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강경민/허세민/이혜인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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