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의무 속 학생예비군 학습권은 어디에”

입력 2023-06-28 21:12   수정 2023-06-28 21:13

[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염준호 대학생기자] “O월 O일 OOO수업 필기나 녹취본 구해요. 예비군훈련 참여 때문에 수업에 못 가서 필기 공유해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다음은 매년 학생 예비군훈련이 있는 시기 대학 커뮤니티에 흔히 보이는 게시글이다. 기자가 서울 한 대학 SNS에 ‘예비군 필기’를 검색한 결과 필기 자료나 녹취본을 공유해 주면 사례하겠다는 게시글이 쏟아져 나온다. 교수의 허락 없는 녹취본, 수업자료 등의 공유나 무단 거래의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음에도 학생들은 위험한 거래를 반복한다. 예비군훈련으로 인한 학업 공백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예비군 차별 논란
국내 주요 대학에서 학생 예비군훈련 참여로 결석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서강대 공과대학 교수 A는 수업 중 불시에 진행한 퀴즈에 예비군훈련 참석으로 인해 결석한 학생을 0점 처리해 논란이 됐다. 같은 달 성균관대에서도 교수 B가 예비군훈련으로 인해 결석한 학생을 감점하겠다고 밝혀 대학생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해당 교수는 결석한 학생에게 “조국과 나 자신을 포함해 가족을 지키는 일이니 헌신하시고, 결석에 따른 1점 감점은 바뀌지 않으니 인내로 받아들이시라 꼰대로서 권유드린다”고 했다.






이처럼 작년 말 서강대와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점화된 예비군 차별 논란은 해당 교수의 해명과 사과가 이어지며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외대에서 한 교수가 예비군훈련을 다녀온 학생에 결석 처리를 하며 불이익을 준 사실이 알려지며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4학년 김모(29) 씨는 교내 비교과 프로그램 학기 말 최종 성적에 1등을 하고도 훈련 참석으로 인한 불이익으로 2점이 감점되며 12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놓치게 됐다. 김씨는 이의를 제기했으나, 담당 교수는 “비교과 프로그램에는 예비군법보다 센터 규정이 우선한다”며 성적 정정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군법 제10조의 2항은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의 장은 예비군대원으로 동원되거나 훈련을 받는 학생에 대하여 그 기간을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그 동원이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하게 처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출석 인정은 당연, 학업 공백 대책 시급
이처럼 예비군훈련 참여로 인한 불이익과 논란이 계속되자 국방부와 교육부는 지난해 전국 대학에 공문을 보내 학생예비군의 학업 불이익 방지를 당부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작년 11월 국회에서 “예비군 훈련에 참여한 대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국내 주요 대학도 출석 인정을 골자로 한 내부 규정 준수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부 대학생들은 출석 인정은 당연하고 예비군 참석으로 인한 학업 공백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훈련 당일에도 수업이 정상 진행되고, 결석한 수업 진도는 오롯이 학업 공백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한 번의 결석이 성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서강대의 경우처럼 훈련일에 성적에 반영되는 퀴즈가 진행되거나, 시험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의 강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한 대학 사회과학대에 재학 중인 3학년 A(25) 씨는 “학과 특성상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시험에 직결된다”며 “강의 하나만 놓쳐도 거기서 시험이 나올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재학생 4학년 B씨는 “출석은 1점에 불과하지만 훈련 때문에 놓친 시험 문제 하나는 수십 점이 될 수도 있다”며 불안감을 보였다. 국민대에 재학 중인 C(24) 씨는 “결석한 학생을 위해 녹화 강의를 올려주는 교수님들도 계시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며 “혼자 수업을 듣는 경우 다른 학생의 필기나 녹취본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대학에서는 출석 인정과 동시에 보충 수업자료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성균관대 교무처는 학내 모든 교수, 강사에게 학생예비군 기간 출석 인정 및 학습 자료 지원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교수 재량에 의존하는 권고 조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3학년 D(24) 씨는 “예비군훈련 당일 전공 수업이 두 개나 있었는데, 모두 대면 수업이라 녹화 강의가 따로 없었다”며 “더이상 학습권 침해가 생기지 않도록 학교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대학 학칙과 내규 살펴보니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한 주요 10개 대학 학칙과 내규를 살펴보면 모든 대학에서 예비군훈련으로 인한 출석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조항만 있을 뿐, 예비군 학업 공백을 보충하는 내용을 담은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출석 인정을 받으려면 증빙서류를 예비군 소집일 7일 이내에 신청하여야 하는 등의 제한 조건이 있었다.

예비군 학습권 논란이 불자 연세대는 지난 2월 ‘출석 인정에 관한 지침’ 제4장 제10조 2항에 ‘예비군훈련 또는 징병검사로 인하여 결석한 학생의 출석 인정 요청을 받은 교원은 이를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이를 사유로 불리하게 처리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학칙에 반영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예비군법의 조항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소극적 학칙 개정으로 학업 공백을 메우는 적극적 조치를 이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학업 공백 스스로 메우는 학생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학교 측 반응에 학생들은 스스로 학내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필기 자료를 공유하고, 필기나 녹취본을 거래하는 등 학업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몇몇 학생은 공들여 필기한 자료를 통째로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부 학생의 호의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여기에 더해진 예비군 차별 사례는 학생 불만에 불을 댕겼다.



학생의 불만이 증폭되자 일부 대학의 경우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업 공백에 대응하는 시도를 벌여왔다. ‘수업자료 제공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작년 9월과 11월 두 차례 예비군 학생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훈련 일정과 겹치는 강의에 한해 수업자료 제공을 지원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1일부터 6일까지 예비군훈련으로 인한 학습 공백을 보완하고자 ‘학생예비군 필기 자료 공유 사업’을 시행했다. 경희대 외국어대학 학생회는 아예 예비군훈련 당일의 전공 강의를 녹화해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사업을 진행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수업자료를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학칙 개정을 직접 요구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명지대 인문캠퍼스 총학생회는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학생예비군 학습권 보장 학칙 요구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교본부에 관련 학칙 개정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성균관대, 중앙대 등 일부 대학 학생회가 예비군 학습권 불편 사례 조사나 학생 의견 수렴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학습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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