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사업?"…삼성서 홀로서기 후 '기사회생' 한 회사 [신현아의 IPO 그후]

입력 2023-07-09 07:11   수정 2023-07-09 08:04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누구나 봤을 법한 '전자가격표(ESL)'. 과거엔 사람이 일일이 가격표를 바꿨지만, 이제는 컴퓨터 한 대면 손쉽게 교체 가능하다. 대신 실시간으로 다수의 개별 가격표를 통제하기 위해선 고도의 통신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ESL 시장에서 후발주자로서 7년 만에 전세계 15위에서 2위로 우뚝 선 업체가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솔루엠이다. 8년 전 삼성전기에서 '돈 안 되는 사업부'를 떼어내 설립한 회사란 평가가 무색하게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솔루엠의 종가는 2만7500원이었다. 연초 이후 지난 7일까진 58% 올라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13%)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별한 호재가 있었다기보단 호실적이 주가를 밀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8751억원에서 1조3752억원으로 5000억원가량 불었다.
IPO 분위기 좋았는데…상장 후 힘 못 쓰는 주가
솔루엠은 2015년 삼성전기 품에서 나왔다. 삼성전기의 디지털모듈(DB)사업부에서 파워모듈·튜너·ESL 사업 부문을 분사한 게 솔루엠이다. 분사 당시 6000억원대 수준이던 매출 규모는 2020년 1조원을 넘어섰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 매출은 매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 1분기도 역대 최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동시에 기록했다. 1분기 매출은 5796억원, 영업이익은 502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7.2%, 영업이익은 234.1% 늘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은 2021년 2월에 했다. 상장 전 이 회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높았다. ESL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솔루엠은 수요예측에서 코스피 공모주 가운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체 기관 신청 물량의 87% 이상이 희망밴드 상단 이상의 가격을 써내면서 공모가는 희망밴드(1만3700~1만5500원)를 훌쩍 넘는 1만7000원에 결정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상장 후 주가 흐름은 지지부진했다. 전방 산업인 TV 시장의 둔화로 회사의 캐시카우인 3in1 보드 등 전자부품 부문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지난 7일 종가(2만7500원)는 상장 첫날 종가 수준(2만9150원)에 머물러 있다. 공모가 대비로는 62% 웃돌고 있지만 상장한 지 2년이 넘은 기업임을 고려하면 어디 내놓을만한 수익률은 아니다.

ESL은 삼성전기의 '돈 안 되는 사업부'였다. 솔루엠을 분사할 때 회사 내부적으로 ESL 사업을 가져가야 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신생 회사인 만큼 수익성이 나지 않는 사업은 부담이었다. 실제 2016년 ESL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이래 2019년까지 ESL 사업부는 만년 적자였다. 흑자전환한 건 2020년, 불과 3년 전이다. 그러다 2016년 전세계 15위에서 작년 2위(시장 점유율 18%)로 도약했다.

빠른 성장의 비결은 자체생산 능력이다. 삼성전기 시절부터 보유했던 파워모듈 생산공장을 적극 활용했다. 생산이든 연구개발(R&D)이든 비용 절감을 위해 위주를 주는 경쟁업체와의 차이점이다. 덕분에 수익성을 확보했다. 직접 만들다 보니 고객사 맞춤형 제품을 제작하기도 수월했다.
버려질 운명에서 '알짜' 사업부로
ESL의 핵심으로 꼽히는 배터리 수명도 10년으로 경쟁업체보다 2배 더 길다. 분사 전부터 쌓아온 무선 통신 기술력까지 더해져 안정적인 데이터 송신이 가능한 점도 강점으로 통한다. 색상이 7개로 세분화돼 있는 데다 발광다이오드(LED) 기능이 추가돼 재고 부족, 할인 제품 등 제품별 특징을 표시 가능하단 점도 경쟁력이다.

버려질 운명이었던 ESL 사업은 이제 솔루엠을 먹여 살리는 1등 공신이 됐다. 올해 1분기 ESL 사업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배가량 증가한 3011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국증권에 따르면 ESL 연간 매출 비중은 올해 41.6%에서 내년 43.2%로 확대될 전망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ESL 매출은 8000억원 전후, 시장 점유율은 최소 30%로 1위 업체와의 격차를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선 ESL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솔루엠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최근 인건비와 업무 효율성 문제로 무인화 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ESL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다.

ESL는 확장성까지 무궁무진하다. 기존엔 주로 대형마트, 백화점, 슈퍼마켓 등 유통업체의 가격 표시기로 쓰였다면 최근엔 대형병원, 스마트팩토리, 물류센터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띄워야 하는 디스플레이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활용 가능하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최대 민간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X) 공장에도 솔루엠의 ESL 솔루션이 적용된다.

시장조사기관 인더스트리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L 시장 규모는 약 17억달러(약 2조2800억원)로 2030년까지 연평균 19.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ESL 침투율이 10%에 못 미치는 만큼 확장성에 기반한 수요처 다변화로 가파른 매출 성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최근 1위 사업자인 프랑스 이마고택의 회계 부정 논란에 따른 반사 수혜가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수주전에서 솔루엠의 우위가 상대적으로 부각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새 먹거리도 부단히 발굴 중
회사는 TV에 들어가던 파워모듈 관련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용 전략모듈(PM)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 3분기 전기차 충전기용 30킬로와트(kW) 파워모듈을 출시한다. 내년엔 50kW급을 내놓는다.

솔루엠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북미 전기차 시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해 멕시코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올 하반기 완공되며, 내년 가동이 목표다. 해당 공장에서는 전기차 충전기용 전력모듈이 주로 생산될 예정이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도 직접 뛰어든다. 솔루엠 관계자는 "내년부터 유럽과 북미, 베트남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공격 수주 나설 계획"이라며 말했다. 회사는 올해 초 베트남 국영기업인 페트로베트남 전력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함께 개발 중이다.

기업공개(IPO) 당시 지적되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관련 계열사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회사 설립 첫해 90%를 차지했던 삼성그룹에 대한 매출의존도는 작년 기준 62%로 줄었다. 반면 ESL,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 부문 매출 비중은 2015년 14%에서 78%로 늘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2차전지, 헬스케어 등 신규 비즈니스를 발굴·육성해 성장성을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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