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제로성장' 시대…'에루샤' 중 에르메스는 유독 건재한 이유

입력 2023-07-17 15:03   수정 2023-07-18 10:00


한국은 지난해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이었다. 명품 구입에 1인당 325달러(모건스탠리 추산)를 써 미국, 중국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경기급랭 등의 여파로 사정이 확 바뀌었다.

주요 백화점 명품 매출이 속속 감소세(전년 동기대비)로 돌아서고 있다. ‘명품족’들 사이에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면서 브랜드별 희비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여전한 에르메스 인기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 하이엔드 명품 특화 점포를 운영하는 A백화점은 상반기 명품 분야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매달 한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가까스로 유지하던 B백화점도 6월에 0%대로 추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창궐을 계기로 2020~2022년 명품 시장이 폭발함에 따라 주요 백화점 명품 매출이 매년 30~40% 급증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명품족들은 소비 금액은 줄이되 꼭 사야 할 브랜드의 구입은 이어갔다. 한국경제신문의 ‘빅3’ 백화점 취재 결과 최고급 명품의 대명사로 굳어진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중 에르메스가 가장 높은 증가율(20%대) 증가율을 보였다.


에르메스가 시장 조정기에도 돋보이는 성장세를 보인 건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하는 데 성공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에르메스는 리셀(되팔기) 열풍으로 중고거래 물량이 늘어나자 지난해 3월 재판매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구매 이력이 일정 기준을 충족한 고객에게만 인기 제품을 파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통해 ‘연간 매출 증가율 20% 유지’라는 내부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신흥 강자’ 입지 굳힌 디올

‘에·루·샤·디(디올)’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디올도 호성적을 올렸다. 30%대 증가율로, 구찌까지 포함한 5대 주요 명품 가운데 실적이 가장 좋았다.

디올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의 후계자로 첫손에 꼽히는 첫째 딸 델핀 아르노가 이끄는 브랜드다. LVMH는 지난 2월 그가 디올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후 “샤넬에 필적하는 브랜드로 키우겠다”며 공격적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디올이 가장 공을 들이는 국가로 손꼽힌다. 2017년 9개였던 백화점 매장을 26개로 확대한 것을 비롯해 서울 성수동에 1500㎡ 규모의 초대형 플래그십을 열어 명품업계를 놀라게 했다. “극단적으로 여성스러운 디올의 이미지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게 패션업계의 분석이다.
◆샤넬·구찌의 부진

이에 반해 샤넬·구찌는 상반기에 가장 체면을 구긴 브랜드들로 거론된다. 2020~2022년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했던 샤넬은 그 폭이 6%로 뚝 떨어졌다. 구찌는 5대 명품 중 유일하게 역성장(-8%)했다.

샤넬의 경우 ‘리셀 거래가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이미지에 흠집이 난 것 아니냐’는 게 관련 업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부티크에서 사는 브랜드가 아닌,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구입하는 브랜드’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는 얘기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엔데믹 선언 후 샤넬의 인기 품목 중 상당수가 중국에 먼저 풀리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서의 부진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구찌는 트렌드 변화 대응에 실패한 게 부진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15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맡아 로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디자인으로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최근 몇 년간 ‘미니멀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실적이 저조해졌다.
◆리셀시장 떠난 명품족들

가격표와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되파는 명품 리셀(되팔기) 시장은 2020~2022년 대호황을 누렸다. 수백만원의 웃돈이 붙어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하이엔드 명품의 대명사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이 일반 매장에서는 구매이력이 없는 소비자에게는 아예 물건을 내어주지 않는 판매 행태를 고수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명품에 갓 입문한 젊은 세대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정품 구입보다 리셀 거래가 더 익숙하다”는 게 유통업계의 얘기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사정이 바뀌었다. 경기둔화로 젊은 ‘명품족’들이 리셀 시장을 속속 이탈하는 추세다. 17일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명품족들 사이에 ‘샤넬 클미(클래식 미디움의 약자)’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샤넬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실버 로고)’은 현재 정가보다 싼값에 거래되고 있다.

정가가 1450만원의 이 가방의 최근 리셀 시세는 1200만~1300만원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렸던 제품이다.

상반기 거래 건수는 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6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디올의 인기 제품 ‘레이디백 미디움‘도 지난달 말 700만원에 거래됐다. 이달 초 가격이 인상되기 전 정가(810만원)보다 13.5% 싼값이다.
◆'중고' 아니면 ‘스텔스 럭셔리’로 재편

그렇다고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이 완전히 식은 건 아니다. “실속소비가 대세가 되는 추세”란 게 명품업계의 시각이다. ‘탈(脫)리셀’ 흐름이 가속하는 가운데 중고(리세일) 시장은 고속성장 궤도에 올랐다.

중고명품 플랫폼 구구스의 지난 2분기 거래액(구매 확정 기준)은 전년 동기대비 동기 대비 22% 늘어난 557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명품 거래 플랫폼 트렌비의 중고명품 매출 비중도 1년 새 2배 늘었다. 지난해 6월 전체 매출에서 중고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에는 22%로 불어났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부자들은 일반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스텔스 럭셔리는 상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한눈에 어느 브랜드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초고가 명품을 말한다.

델보·로로피아나·발렉스트라·벨루티 등이 대표적인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로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 클미가 ‘결혼식 5초백(결혼식장에 가면 5초에 한 번씩 보이는 가방)’이 됐을 정도로 명품이 대중화해 고액 자산가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윤/이미경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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