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인플레 책임, 정말 기업에 있나

입력 2023-07-17 17:55   수정 2023-07-18 00:11

탐욕을 들이대면 논쟁에서 우위에 선다. 상대가 기업이면 더 그렇다. 인플레이션은 기업의 욕심 때문이라는 말이 귀에 솔깃한 이유다. 소위 ‘탐욕인플레이션’(greedflation) 논란이다. 이사벨라 웨버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가 2021년부터 줄기차게 내세우는 주장이다.

논쟁의 판을 키운 건 지난달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다. 최근 1년간 유럽 인플레이션의 절반(45%)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원인이라는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임금인상의 인플레이션 기여도는 불과 25%다. 웨버 교수에 동조하는 듯한 스토리 라인이다.

그러니까 물가를 잡는 건 ‘기업 이윤 억제’에 달렸다. 웨버 교수는 횡재세(windfall profit tax)와 가격통제를 제시한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 일변도의 획일적 대응은 노동자에게 더 큰 부담을 지웠다고 본다. 불공정하다는 거다.

가격통제는 득보다 실이 많다. 경제학 교과서 설명이다. 그래도 현실에서 가격통제는 존재감이 막강하다. 글로벌 공급망 충격 이후 영국은 식료품에, 유럽은 천연가스에, 미국은 석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했다. 변방에 머물던 탐욕인플레이션 논의가 중심부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기다렸다는 듯 진보세력이 목청을 높인다. 이참에 인플레이션 책임을 기업에 따져 물어야 한다는 거다. 탐욕인플레이션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쏟아진다. 노벨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탐욕인플레이션을 진짜 멍청한(truly stupid) 발상으로 평가절하한다. 충분히 여물지 않은 가설 수준이기 때문이 아닐까. 설득력을 갖추는 데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유다.

첫째, IMF 보고서는 탐욕인플레이션이 유럽의 인플레이션 구조를 바꿨음을 입증한 것이 아니다. 보고서는 탐욕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한다. 한때 높았던 기업 이윤의 인플레이션 기여도는 2025년 중반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추정한다.

둘째, 횡재세는 도리어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할 수 있다. 세금이 늘면 기업은 그 짐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조세 귀착(歸着) 이론(tax incidence)이다. 당연히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은 횡재세 부과 이전보다 높아진다. 미국에서 횡재세는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 1980년 지미 카터 행정부가 도입한 횡재세를 1988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폐지한 바 있다. 엉성한 과세 논리도 시빗거리다. 기업 이윤이 급감해 인플레이션이 안정되면 그동안 거둔 횡재세를 반환해줘야 하나?

셋째, 탐욕적 이윤이 문제라면 경쟁정책, 공정거래정책으로 대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 바라트 라마무르티는 기업의 이익 독점 이슈를 연방거래위원회(FTC)나 농업부 등이 다룰 과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주체가 미국 중앙은행(Fed)임을 분명히 한다.

넷째, 유럽과 달리 한국 경제는 탐욕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여건과 거리가 멀다. 2022년 1612개 상장사(대기업 159개·중견기업 774개·중소기업 679개) 영업이익이 34% 감소했다(대한상공회의소). 특히 대기업 영업이익이 급격하게(-44.1%) 쪼그라들었다. 2022년 피용자보수비율(노동소득분배비율)이 전년보다 증가(67.7%→68.7%)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피용자보수란 국민총소득(GNI ) 가운데 임금 노동자가 가져간 몫이다. 기업 몫(자본소득분배율)은 줄고 노동자 몫이 더 커졌다는 의미다. 기업의 이윤이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고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생필품 가격 급등은 극약처방을 해서라도 막는다. 그것이 이론상 맞기 때문은 아니다. 고육지책일 뿐이다. 탐욕인플레이션은 2009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과 닮은꼴이다. 민생고 책임을 기업·자본가로 돌린다는 점에서. 반짝 유행하다 사라진 현대화폐이론(MMT)과도 닮았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무리수(횡재세)를 정부에 부추긴다는 점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1.4%로 하락했다. 세계 10위였던 한국 경제는 순위가 단박에 세 단계 추락했다. 성장 활력의 불씨를 되살려야 하는 중대한 시기다. 이 판에 기업을 꼭 찍어 탐욕인플레이션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건 코미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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