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을 연주한다. 이 곡에서 심벌즈는 한 번 등장한다. 2악장이 시작하고 무려 176마디 후, 단 한 번이다. 타악기 주자가 문득 다른 생각에 잠겨 177째 마디를 놓쳐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설령 관객이 모른 채 넘어간다 해도 함께 연습해온 동료들, 지휘자, 누구보다 연주자 자신이 너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상상해봤을 법한 악몽이다. 한순간을 놓쳤을 뿐이지만 모두가 애써 준비한 연주를 망쳐버리는 ‘순간’에 대한 불안은 항상 우리를 따라다닌다.유난히 현악 파트의 트레몰로(같은 음을 쪼개서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가 길게 지속되는 곡들이 있다. 트레몰로가 20마디, 30마디 넘어가기 시작하면 지금 어느 마디를 연주하고 있는지 놓쳐버리는 일이 연습 때마다 비일비재하다. 옆자리 단원과 이런 황망한 속삭임이 오간다.
“우리 지금 어디 하고 있어?”
“……나도 몰라.”
모든 연주자는 실수를 한다. 음정을 틀리거나 소리가 찌그러지거나 템포를 놓치는 등 다양한 실수가 있다. 연주자들은 그것을 피하고 싶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실수가 전혀 없다는 것만으로는 좋은 음악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음악가도 실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모든 연주자에게 무대는 떨리는 장소일까.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에는 대개 드러나는 서사도 없고 색채나 동작도 없다. 무엇이든 연상시키고 영감을 줄 수는 있지만, 정작 음악에는 소리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감각은 분산되지 않는다. 음악은 그 장소의 흐르는 시간이며 공기 자체다.
얼마 전 협연을 방불케 하는 어렵고 긴 솔로 파트를 연주하며 오랜만에 그것을 느꼈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샌드라 불럭이 처한 것과 같이, 우주의 고독과 신비, 한없는 막막함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내게 닥쳐왔다. 나는 그 떨림과 외로움을 음악의 언어로 어떻게든 다루어내려 애쓴다. 충분한 연습, 곡에 대한 이해, 경험과 익숙함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거기엔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제3의 무엇이 더해진다. 무대에서의 떨림과 긴장은 항상 두렵다. 그럼에도 그 희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서, 나는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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