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은 일, 모두 맡기세요"…의사 '짜증' 잠재울 AI의 묘수 [긱스]

입력 2023-07-28 14:59   수정 2023-07-28 15:00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산업 현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굿닥의 배진범 전략 책임(Head of strategy)이 한경 긱스(Geeks)에 의사 진료, 바이오 연구, 심리 상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대두되고 있는 AI의 역할론을 4회에 걸쳐 다뤘습니다. 마지막 회인 이번 글에선 의료 행정을 대체하는 AI에 대해 분석합니다. 기술적 신뢰도에 기반한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침투 중이라는 설명입니다.


병원 갈 때 자주 생각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까. 아픈 몸을 이끌고 간 환자도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앱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 인터뷰를 해보면, 높은 수준의 의술보다는 친절한 병원을 찾는 사용자가 제법 많다. 가끔 생각한다. 의사와 간호사를 생성 AI가 대체할 순 없을까?

프랑스 헬스케어 스타트업 나블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산드르 르브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대언어모델(LLM)이 엄청나게 강력하지만 5%의 경우 완전히 틀릴 수 있으며, 의료 분야에서는 이 오류를 감당할 수는 없다.” 생성 AI가 만들어내는 그럴듯한 거짓말, ‘환각 현상’도 문제다. 결국 의료진 대체는 불가능한 셈이다.

이제 생성 AI의 의료 행위 가능성은 닫힌 것일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오류율이 0%가 될 일은 없다. 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생성AI는 인간을 위한 도구고, 거버넌스를 통해 제어할 수 있는 도구다. 의사를 대체할 순 없지만 의사의 수고를 덜어줄 수는 있으며, 야기될 문제도 조금씩 잡아갈 수 있다. 의료행정의 AI 대체로 의사와 간호사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면, 친절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의학 용어 ‘초4’ 수준으로 바꿔주는 AI

‘무(無)병장수’가 아니라 ‘유(有)병장수’의 시기에 들어섰다. 병원에 갈 일이 많아졌다. 기대수명은 증가하고 있고, 관리해야 하는 질병도 늘었다. 노령 인구 증가로 사회적 돌봄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예상하지 못한 질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사회가 짊어져야 할 의료의 무게가 이전과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단순 사회적 비용만 커진 것이 아니라 개인 입장에서도 의료에 돈을 써야 할 이유가 늘었다. 의료 비용을 낮출 만큼 선진화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유병장수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지점에서 생성 AI가 의료에 기여할 면이 있다. 생성 AI는 의료 현장에서 노동집약적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도구다. 생성 AI의 도움을 받으면, 의료인은 보다 많은 시간을 앞에 있는 환자에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AI가 의사를 조금이라도 대체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당장 의료인의 수고와 시간을 줄여주는 건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스타트업 나블라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발생한 대화를 진료의 다양한 결과물로 자동 변환해 준다. 처방전, 후속 예약 메모, 상담 요약 등이 가능하다. 이 스타트업은 이미 2018년에 의사가 환자 기록 업데이트에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발견했고, 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나블라의 최고 의료 책임자이자 의학박사인 제이 파킨슨은 “의사인 나는 의사들 시간이 부족하고, 전자 건강 기록 작성보다 중요한 일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나블라의 임상 노트를 통해 의사는 진료 내내 환자 눈을 바라볼 수 있고, 진료 요약 전송으로 환자가 한 모든 말을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솔루션 유용함이 의사를 돕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한 것이다.

진료 과정이나 문서작성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사전 진료를 돕는 생성 AI를 만든 기업도 있다. 미국의 1차 진료(Primary Care) 클리닉 체인인 카본헬스에서는 환자가 예약 시에 말했던 내용과 쌓았던 정보를 생성 AI를 통해 분석한다. 정보는 의사에게 진료 전 제공되는데, 이를 통하면 진료 과정을 담는 전자 의료 기록 중 약 90%가 의사의 수정 없이 저장된다. 사실상 의사는 진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 스타트업 어브릿지는 진료 과정을 환자에게 전달할 때, 모든 의학 용어를 초등학교 4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일반 영어로 바꾸어 제공하고 있다. 환자에게 진료 과정 녹음에 대한 양해만 구하면, 이를 녹음 및 저장해 생성 AI가 적용된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환자는 진료 중 의사와 간호사가 한 말의 최대 80%를 잊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의학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어브릿지는 이 어려운 용어를 AI가 쉬운 문장으로 만들어 보완하는 것이다. 전달받은 진료 내용을 클릭하면 그 내용을 음성으로 다시 들을 수도 있다. 환자가 잊었던 진료 내용도 기억할 수 있게 돕는다.
의료 행정 AI, 의료비 청구·퇴원 서류도 '척척'

생성 AI는 보다 직접적인 의료 행정 처리도 돕는다. 의료 기술 스타트업 아웃바운드AI의 GPT 기반 가상 에이전트는 의료비를 청구하는 과정을 돕고 있다.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사람에게 의료의 내용과 그 비용에 대해서 설명하는 역할을 대신한다. 의료 청구 내역에 대한 GPT 분석과 음성 전달 기술이 더해진 것인데, 고객 응대 중에 발생한 대화를 메모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간 상담자에게 전달해 도움을 구하는 역할을 한다. 스테드 버웰 아웃바운드AI 대표는 “AI가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해 인간을 보강한다”며 “AI 가상 에이전트는 20~50% 저렴한 비용으로 정규직 상담원(FTE)의 4~5배에 달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행정에 대한 비용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학계 시도도 이어진다. 영국의 의학 학술지 란셋에는 현직 의사들이 퇴원 요약지에 챗 GPT를 활용한 사례가 소개됐는데, 간단한 입력만으로 몇 초 만에 공식적인 퇴원 요약지를 출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기존 방식으로 작성된 퇴원 요약서에는 세부 정보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경우가 사라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학 AI 센터는 개인의 고유한 의료 기록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처방을 내린다. 심장병, 암과 같은 일반적인 질환이나 낭포성 섬유증과 같은 희귀 질환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개별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 투여 시기, 최적의 용량, 의약품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인데, 기존의 성별·연령별 등 포괄적 기준 처방보다 더 나아간 방법이다.

임상 시험에 있어서도 AI 기반 개인화가 의미를 가진다. 임상 시험 결과가 통계적으로 좋지 못한 연구일지라도, AI 분석을 통해서 임상이 잘 통한 그룹을 찾아내 연구할 길이 생겼다. 이런 여러 그룹에 대한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임상시험을 사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디지털 트윈이란 디지털 세계 안에 현실 속 사람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을 말한다. 의료 전자 기록이 상세하게 기록될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예측 확률도 높을 것이라 기대를 받는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 의사보다 '덜 유해한' AI…"지원 역할 충분"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이 상당한 의지를 갖고 의료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MS는 2021년 음성 인식 AI를 기반으로 의료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기업 뉘앙스를 197억달러(25조원)에 인수했는데, 당시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향후 5000억달러(637조원) 규모 시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뉘앙스는 음성 인식 AI에 GPT 시리즈를 붙여 의료를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약 55만명의 의사가 뉘앙스의 의료용 받아쓰기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GPT-4를 완전 통합하겠다는 청사진이다.

결합이 기대를 받는 이유는 진료과마다 차이를 보이는 의료 용어 사용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다양한 억양 문제에 대한 음성 인식도 해결했다. 뉘앙스의 의료 사업부 수석 부사장인 디아나 놀은 “궁극 목표는 의사들이 관리 작업에 쓰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새로운 프로젝트 ‘DAX Express’도 내놨다. 의사와 환자의 진료 내용을 몇 초 내에 임상 노트로 요약하고, 의사가 즉시 검토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이다.

구글의 도전도 만만찮다. 챗 GPT 때문에 조급하게 구글 생성 AI 서비스인 바드(Bard)를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지만, 의료 분야에선 얘기가 다르다. 구글의 의료 분야 전문 생성 AI 모델인 ‘Med-PaLM2’는 다른 어떤 생성 AI 모델보다 높은 성능을 자랑하고 있다. ‘네이처(Nature)’지에 Med-PaLM2에 대한 임상 결과가 피어 리뷰(peer-review)를 뚫고 이달 승인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네이처 발표에 따르면, 임상 전문의가 Med-PaLM2에 의학적 질문을 던졌을 때 과학적 합의에 부합하는 응답을 내놓은 확률은 92.6%이다. 실제 의료 전문가의 수치인 92.9%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이다.

이 AI는 5.8% 정도로 확률로 환자에게 해를 끼칠 응답을 내놓았는데, 임상의의 6.5% 비율보다 우수하기도 했다. 인간보다는 덜 맞추지만, 덜 유해할 수 있는 셈이다. GPT-3.5는 미국 의학 면허 시험에 50% 점수로 겨우 합격했지만, Med-PaLM2는 85% 점수로 통과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의 연구원들은 앞으로 의사가 낯선 의료 사례를 접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전문 자원을 제공하고, 임상 문서 작성의 번거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구글은 의료 분야에서 텍스트만으로 정보를 분석하는 단계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연례 I/O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구글은 이미지와 텍스트 모두에서 정보를 추출하여 엑스레이(X-ray)와 유방 촬영 사진의 정보를 해석하고 환자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Med-PaLM 2의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의료 현장, 생성 AI 막연한 위험성 경계해야"

현재 프로덕트가 나온 방향은 하나의 결과로 집약된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포함한 의료관계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진료 전에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거나, 진료 과정 중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주거나, 진료 후의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료 행위는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당연한 현 상황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도일 것이다.

의료 전반에 적극적으로 생성 AI를 도입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수이다. 생성 AI를 통한 결과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할 지 미지수다. 환자나 개발자,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할까?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그들의 책임 영역으로 봐야 할지 협의할 문제가 많다. 구글의 Med-PaLM2 사례처럼, 인간보다 나은 AI에 대한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부분은 조금씩 오류를 줄여가는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생성 AI의 조언이나 결과물을 인간 의사가 수용했다거나 거절했다는 데이터를 쌓는 것만으로도, 생성 AI는 더 나아갈 수 있다.

다수의 생성 AI 기업은 의료 관계자가 의료행위를 더 잘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AI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것을 표방한다.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AI 시스템을 검증하는 새로운 방법, AI가 생성한 예측 및 추천을 의사와 환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의료 관계자의 방점도 생성 AI를 도구로써 바라보고 ‘더 잘 쓰는 것’에 있다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의료 리스크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생성 AI가 가진 위험을 지나치게 경계해서 쓰지 않겠다는 결론은 인간을 위한 도구를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일이다. 모든 도구는 처음에 다 낯설고 위험하게 다가온다. 아주 멀리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그랬고, 19세기의 전기가 그랬으며, 멀지 않은 시기의 인터넷이 그랬다. 생성 AI는 의료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인의 수고를 대체하고 의료인에게 환자에게 집중할 힘을 실어주기 위한 도구다. 의료인을 인간으로 바꾸어도 그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잘 쓰는 방법을 논의해야 하는 시기이지, 안 써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다.
배진범 굿닥 전략 책임(Head of strategy)

IT 관련 산업 전반에서 프로덕트와 데이터를 통해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어떻게 전략 지점을 만들지에 대하여 고민하며 전략 PO(Product Owner)로 근무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카카오에서는 약 8년간 전사 서비스 전략과 광고 데이터플랫폼, 커머스 기획과 전략을 담당했다. 그 후 아모레퍼시픽에서는 디지털 전환 전략을 담당했고, 무신사와 시드(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거쳐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굿닥의 전략 PO와 Head를 맡아 제품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 성장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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