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그린 아내 그림 보고 반한 연하남…불륜의 결말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23-07-29 08:15   수정 2023-07-29 13:11


남자가 태어난 곳은 노르웨이 바닷가 시골 마을의 한 정신병원. 어머니는 이 병원에 입원 중인 심각한 정신질환자였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친척 집에 맡겨진 그는 아홉 살까지 갇혀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학교에 가기는커녕 집 밖에 놀러 나갈 수도 없었지요. 어린 시절 그에게 바깥세상은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한적한 공터가 전부였습니다.

그랬던 남자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덴마크의 ‘국민 화가’로 우뚝 섰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팔짱을 낀 채 해변을 거닐며 달콤한 여름밤을 만끽하는 남자. 해는 수평선 너머로 떨어졌지만 아직 하늘에 푸르스름한 빛이 남아 있는 잠깐의 시간, 하늘빛이 바다 빛과 뒤섞여 가장 아름다운 이때를 사람들은 ‘푸른 시간’(Blue hour)이라 불렀습니다. 하루 중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푸른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밤이 찾아오듯, 자신의 삶에도 짙은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요.

남자의 이름은 노르웨이 태생의 덴마크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1851~1909). 최근 몇 년 새 재조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 자연주의 화가입니다. 오늘은 크뢰위에르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정신병원에서 태어난 아이


크뢰위에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본 광경은 낡은 정신병원 천장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노르웨이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인근 부자 집안의 도련님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이따금씩 이 동네를 찾아오는 선장이라고도 하고,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부모는 그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모 부부가 크뢰위에르를 맡아 줬습니다. 이모는 크뢰위에르를 아껴 줬습니다. 문제는 지나치게 아꼈다는 겁니다. 이모는 소년이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학교에 가지도, 나가서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좋은 뜻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크뢰위에르는 일종의 감금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이모부가 한마디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크뢰위에르에게 무관심했습니다. 친구도 없는 소년이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집 안의 물건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뢰위에르의 운명이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소년이 아홉 살 되던 해였습니다. 생물학자인 크뢰위에르의 이모부는 미생물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문에 참고자료로 붙일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현미경용 카메라를 쓰면 되겠지만, 당시에는 현미경으로 보이는 광경을 연구자가 직접 그림으로 옮겨야 했거든요. ‘크뢰위에르가 맨날 그림만 그리던데, 한번 맡겨 볼까….’ 이모부는 크뢰위에르를 불러 현미경을 보여주고 한번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완성된 결과물은 아홉 살짜리가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이모부가 논문을 발표하자 “논문도 좋지만 그림 실력이 아주 훌륭하다”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학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모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홉 살짜리가 이 그림을 그렸다고요? 아이가 상당히 머리가 좋겠군요. 잘 가르치면 나중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이모부는 크뢰위에르를 학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기회를 받은 크뢰위에르는 곧바로 천재성을 드러냅니다. 9살 때 미술학교에 들어간 그는 10살 때 바로 상급 학교로 진학했고, 13살 때는 덴마크 역사상 최연소로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예비학교에 입학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를 한번 본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누구보다도 빨리, 잘 그리는 천재”라고 평가했습니다.


그가 스무살의 나이에 전업 화가로 데뷔하자마자 곧바로 유명 인사가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그에게 미술 공부를 하라며 보조금을 줬고, 부자들은 앞다퉈 그를 후원했습니다. 이 돈으로 크뢰위에르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각지의 미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게 단적인 예입니다.
스카겐 바다, 그리고 사랑


그가 동료 화가의 초대로 덴마크 최북단에 있는 스카겐을 처음 찾은 건 1882년. 당시만 해도 이곳은 그저 평범한 시골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크뢰위에르는 스카겐의 신비로운 바다와 하늘에 푹 빠졌습니다. 이곳은 북해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 염도가 다른 두 바다가 만나는 덕분에 스카겐 앞바다에서는 서로 다른 색의 두 물결이 부딪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방향으로 치는 파도가 중간에서 부딪히는 모양은 꼭 바다가 손뼉을 치는 것 같고, 이는 해 질 녘 하늘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합니다.

크뢰위에르는 그 광경을 보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스카겐의 대낮은 끔찍하도록 지루하지만, 해가 지고 달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수정처럼 맑고 매끄러운 물이 빛을 반사한다. 나는 그 모습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매년 여름마다 이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덴마크 출신의 동료 화가들도 그와 함께 스카겐으로 향했지요. 이들은 스카겐에서 먹고,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논했습니다.


37세 때 프랑스 파리에서 동료 화가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건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이름은 마리, 나이는 스물두 살. 덴마크 출신의 그녀는 화가 지망생으로 파리에 유학을 와 있었습니다. 미인이 많은 파리에서도 예쁘기로 유명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지요. 크뢰위에르는 마리의 그 빛나는 젊음과 외모에 반했습니다. 마리도 존경할만한 실력과 명성의 선배 화가 크뢰위에르에 빠졌습니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둘은 이듬해인 1889년 결혼했고, 1년간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1891년에는 스카겐에 큰 집을 마련해 정착했고요. 스카겐의 자연, 그 속에 있는 아내와 동료 예술가들은 크뢰위에르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결혼 6년 차인 1895년 딸이 태어납니다.


그 사이 크뢰위에르는 덴마크의 ‘국민 화가’ 반열에 오릅니다. 덴마크 미술계의 핵심 인물이 된 그에게는 항상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부유하고 존경받는 화가와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단란한 가정. 누구도 이들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푸른 시간’은 저물고


하지만 사실 크뢰위에르와 마리의 관계는 속에서 썩어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먼저 마리. 그녀는 결혼한 뒤에도 그 전처럼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살림하고, 크뢰위에르가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림의 모델을 서고…. 임신 전에도 많지 않았던 그림 그릴 시간은 아이를 낳자 아예 사라졌습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결혼으로 내 앞길이 막혔어.’ 마리는 어느새 남편을 원망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산후우울증까지 겹쳤습니다.

크뢰위에르는 아내의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천재인 크뢰위에르가 보기에 아내의 재능은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취미로 그리면 되지, 왜 억울해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 크뢰위에르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하면서 부부 사이는 더 악화됐습니다. 크뢰위에르는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그림 실력 하나로 인생을 바꾼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생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갈구하며 무리할 정도로 많은 일을 스스로 떠맡았습니다.

과로는 병을 낳는 법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크뢰위에르는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엔 유전적인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크뢰위에르는 무리해서 일하는 걸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상황은 계속 더 나빠졌습니다. 정신질환이 점점 악화하면서 부부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약해져 가는 크뢰위에르에게 결정타를 날린 건 마리의 불륜이었습니다. 1902년 마리가 다섯살 연하의 스웨덴 작곡가 휴고 알프벤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 겁니다. 얄궂게도 알프벤이 마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크뢰위에르가 그린 초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알프벤은 초상화 속 마리의 아름다운 모습에 푹 빠져 ‘이 사람을 꼭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마리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마리는 불륜 사실을 크뢰위에르에게 고백하며 “이혼해달라”고 했지만,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던 크뢰위에르는 “잠깐의 불장난일 뿐이다. 다시 생각해 보라”며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마리와 알프벤의 불륜은 계속됐습니다. 간절히 마리에게 매달리던 크뢰위에르는 1905년 그녀가 알프벤의 아이를 갖게 되자 결국 이혼에 합의하게 됩니다.
바다와 하늘만 남았네
아내가 떠나자 크뢰위에르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정신질환은 빠르게 악화했고, 시력도 나빠져 한쪽 눈이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평생 그려온 그림도 점점 그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마리가 떠난 지 불과 4년 뒤인 1909년, 크뢰위에르는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알프벤이 책임감 없는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서 결혼식을 올리자는 마리에게 알프벤은 “지금은 결혼할 때가 아니다”며 사실혼 관계만을 유지하다가 7년 뒤인 1912년 마지못해 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알프벤은 마리에게 불성실했고, 마리는 또다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하게 됩니다. 1940년 그녀는 홀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참한 환경에서 태어난 크뢰위에르. 그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기회를 잡아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부와 성공을 거머쥐었습니다. 스카겐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뒤로 하고 서 있는 마리의 모습은 그의 행복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크뢰위에르가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한순간 너무나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습니다. 손에 쥔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말입니다.

사랑과 눈물이 담긴 그 모든 드라마는 모두 파도에 쓸려 가버리고, 스카겐 바다와 하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과 그대로입니다. 남은 건 크뢰위에르의 작품들 뿐이네요.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생전 겪은 그 모든 번잡한 일에도 불구하고 크뢰위에르가 자신이 남긴 고요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되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삶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니까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i>*이번 기사는 ‘Peder Severin Kroyer’(Peter Michael Hornung 지음), ‘Peder Severin Kroyer’ (Eric Maurice Fonsenius 지음)과 프랑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 2021년 열렸던 크뢰위에르 전시의 도록 ‘L'heure bleue de Peder Severin Kroyer’ (Dominique Lobstein , Mette Harbo Lehmann 등 지음)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2012년 영화 ‘마리 크뢰이어’의 내용에는 상당 부분 픽션이 섞여 있어 배제했습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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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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