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60도로 얼린 상하이식 게장…中·佛 잇는 홍콩의 미쉐린

입력 2023-08-03 18:26   수정 2023-08-04 02:33


홍콩은 아시안 다이닝의 전쟁터다. 아시아 문화의 융합이 펼쳐지는 곳이자 광둥의 전통 요리들이 공존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홍콩의 레스토랑과 바는 엔데믹 이후 그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각 기업은 물론 홍콩관광청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해져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홍콩에서 지금 가장 핫한 셰프를 꼽으라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아시안 셰프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셰프는 바로 비키 쳉이다. 현재 베아(Vea)와 윙(Wing)이라는 두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홍콩 미식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성장한 쳉은 프랑스 요리를 바탕으로 그의 요리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미국 뉴욕 레스토랑 다니엘의 다니엘 불루 셰프를 통해 프랑스 요리의 기본기와 폭넓은 틀을 축적한 쳉은 10여 년 전 그가 태어난 홍콩으로 돌아왔다.
‘경계 없는 요리’ 개척한 홍콩 미식의 선구자

그가 처음부터 중국 전통 요리를 프랑스 요리에 대입하려고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요리사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시적으로 보게 되면서 지금의 요리 세계를 만들었다. 경계 없는 요리에 대한 그의 탐구와 열정은 중국 요리와 프렌치를 매력적으로 결합하게 했다. 그 결과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홍콩 미식의 선구자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쳉의 요리가 처음부터 사람들의 눈에 든 건 아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베아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몇 해 전부터 원스타를 받기 시작했고, 올해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37위로 존재감을 떨쳤다. 그가 홍콩으로 돌아와 ‘리버티 프라이빗 웍스’에서 총괄 셰프로 근무할 때만 해도 10년 후 자신이 서 있는 이 자리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베아는 2015년 11월 차이니즈-프렌치를 홍콩에 처음 선보이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정식당이나 밍글스가 모던 코리안이라는 장르를 개척, 발전시키며 겪은 성장통과 비슷하다.


윙의 경우는 베아와는 약간 다르다. 중국 전통 레시피에 보다 기반한 요리를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곳이라서다. 2021년 베아에 이어 윙을 열면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중식의 원재료 중 하나인 건어물이었다. 오랜 시간 생선의 부레, 건해삼과 전복을 종류와 크기, 조리법에 맞게 연구해온 그는 베아와 윙에서 선보이는 요리들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쳉 셰프는 두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바쁜 스케줄에도 홍콩관광청에서 이뤄지는 투어 프로그램이나 VIP 방문객을 직접 이끌고 홍콩의 건어물 전문점을 찾아가 설명한다. 그가 가진 중국 요리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열정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제철에 맞는 신선한 재료로만 요리
윙 레스토랑은 동서양의 요리가 전통의 뿌리를 지키며 현대의 감각을 덧입을 때 얼마나 세련된 맛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윙이라는 단어는 중국어로 희망과 인내, 끈기를 의미한다. 쳉은 그의 뿌리와 중국의 문화유산을 미래에 올바르게 전하고 싶다는 비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단일 코스 메뉴로 준비되는 윙의 요리 중 시그니처라고 부를 수 있는 몇 개의 메뉴를 꼽아봤다.

코스를 시작하는 다양한 아뮤즈 부쉬들은 작은 종지에 나란히 담아내는 멋스러운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 중국 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로는 여느 산해진미의 그것보다 ‘불의 향’을 잘 입는 채소류를 꼽는 편이다. 윙에서도 평범해 보이지만 깊이 있는 채소 요리가 있다. 자연스러운 달콤함으로 그 맛을 뽐내는 혹타우, 배추 요리다. ‘차이니즈 화이트 캐비지 위드 진저 시림프 수프(사진)’라는 이름의 이 메뉴는 겨울에만 선보이는데, 홍콩의 로컬 배추인 혹타우의 보드라운 안쪽 부분만을 사용한다. 선명한 녹색 컬러와 원형으로 넓게 펼쳐지는 비주얼은 가족의 번영과 구성원들의 재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생강의 향이 은은하게 펼쳐지는 시림프 수프와 곁들여 즐길 수 있다. 겨울이 아닌 시즌에는 가지에 훈연향을 입혀 직접 만든 새콤한 사워 소스에 살짝 절여 내는데 이 맛은 코스의 초반 입맛을 돋우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쳉 셰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어물 재료 중 하나는 생선 부레다. 쫀쫀하게 잘 불려 전복 소스를 입힌 뒤 작은 접시에 알맞게 담아내는데, 과한 양이 아니라 딱 즐겁게 그 점도와 쫄깃함을 만끽할 수 있다. 곧이어 등장하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하고도 독특한 메뉴, 바로 중국식 게장이다. 간장 게장과 무척 흡사한 모양새를 가진 게 요리인데 신선한 제철 일본산 게를 사용한다고. 영하 60도의 온도를 유지하며 특제 식초 소스와 으깬 마늘로 맛을 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운 절인 게 요리를 만들어 낸다. 이는 정통 상하이 스타일의 게 요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제철을 맞은 신선한 것만 먹으라’는 중국의 격언을 잘 받아들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눈으로 즐기고 향기에 반하고 맛으로 감동

눈으로 압도적인 즐거움을 느낀 뒤 맛으로 감동을 전하는 킹크랩 디시도 빼놓을 수 없다. 선도가 뛰어난 알래스카 킹크랩은 로컬 크랩의 눅진하고 부드러운 알과 함께 쪄낸다. 감칠맛을 더해주는 치킨 오일, 잘게 썬 마늘과 버미셀리 쌀국수를 깔아 완성한다. 자극적이기보다 짭짤한 간이 명징한 빛을 발하는 우아한 뉘앙스가 특징이다. 꽉 들어찬 게살의 풍요로운 맛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섬세하게 접근한 셰프의 조리법과 의도는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코스의 시그니처 중 시그니처는 ‘크리스피 베이비 피존’, 홍콩 사람들의 소울 푸드인 비둘기 요리다. 고기 맛을 강화하기 위해 비둘기를 3일간 건조, 숙성시키는 서양의 요리 기술을 쓴다. 여기에 뜨거운 기름을 부어 겉껍질의 바삭한 식감을 극대화한다. 홍콩의 오랜 허브 전문점 ‘쿵리 허벌 티숍’의 바가세라는 향을 덧입히면 자연스러운 단맛이 올라온다. 디저트와 차도 훌륭하지만 식사 후 제철에 만날 수 있는 생과일을 손질해 선보이는 점 역시 외국인 손님에겐 감동의 포인트다.

윙의 요리에선 와인과 샴페인 외에 향과 맛이 깊은 중국차를 적재적소에 준비한다. 어떤 때는 맛을 정리하는 역할로, 어느 때는 맛을 돋우는 용도로 차의 마력을 적절히 응용한다. 현재 홍콩에서 예약이 가장 어려운 두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윙과 베아는 한 빌딩에서 위아래로 운영된다. 어느 곳에 가든, 자신의 요리 철학을 차근차근 펼쳐나가는 비키 쳉과 팀의 모습에서 홍콩 다이닝의 전환기를 마주할 수 있다.

홍콩=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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