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와 물로 그린 산수화…경치에 취해 휘두르면 '와르르'

입력 2023-08-10 18:32   수정 2023-08-11 00:50


달의 정기와 소나무 기운이 가득하다는 강원 원주시 월송리(月松里). 옛날 이곳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그 입구를 두 개의 큰 암벽이 지켰다. 사람들은 이 암벽을 놓고 “마을을 지키는 성문 같다”고 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마을 이름은 자연스럽게 ‘성문안’이 됐다.

성문안CC(18홀)는 볕이 잘 들어 예나 지금이나 ‘기운 좋은 땅’으로 불리는 이 평야에 터를 잡은 골프장이다. 문을 연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한국 대표 프리미엄 퍼블릭 골프장’을 뽑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됐다. 그럴 만했다. 곳곳에 놓인 아름드리나무는 이곳이 신생 골프장이란 걸 잊게 했고 그림 같은 풍경과 빽빽한 잔디, 고급스러운 클럽하우스는 성문안CC를 회원제 명문구장이란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구룡산과 고양산이 빚은 계곡과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아웃코스 9번홀(파5)에 다다랐다.
프로도 농락당한 ‘착시 그린’
HDC리조트는 90개 홀을 보유한 국내 골프장업계의 ‘큰손’ 중 하나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한때 한솔그룹 산하였던 회원제 골프장 오크밸리CC(36홀)와 잭 니클라우스가 디자인한 회원제 골프장 오크힐스CC(18홀), 퍼블릭 골프장 오크크릭CC(9홀)를 인수한 2019년부터다. HDC그룹에서 골프장 및 리조트 사업을 담당하는 HDC리조트는 당시 함께 손에 넣은 빈 부지에 성문안CC를 그려 넣고 오크크릭CC를 18홀 월송리CC로 재단장했다.

HDC리조트는 이렇게 강원 원주에 골프 왕국을 건설했다. 성문안CC는 그중에서도 HDC가 으뜸으로 치는 골프장이다. HDC리조트 관계자는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맏딸)이 한국 최고의 골프코스를 만들려고 아껴둔 땅에 성문안CC를 지었다”고 했다.

성문안CC 설계는 클럽72(옛 스카이72) 하늘코스와 웰링턴CC, 베어크리크CC 춘천 등을 그린 노준택 로가이앤지 대표가 맡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골퍼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를 구상했다”는 노 대표의 생각은 성문안CC 곳곳에 반영됐다. 원래 이 터에 있었던 돌과 나무를 그대로 살렸다. 3번홀과 4번홀 사이에 있는 돌로 만든 개울이 대표적이다. 골프장 개발 과정에서 나온 돌을 홀 사이에 뒀는데, 물이 없는데도 개울이 흐르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6662m(7287야드) 길이의 페어웨이에는 최고급 양잔디인 벤트그라스를, 러프에는 켄터키블루와 페스큐를 섞어 심었다. 그린 대부분은 넓고 평탄하다. 통상 홀에 가까이 붙이면 ‘OK’를 받는 아마추어 골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이 골프장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이 열렸을 때 “프로들에게 그린이 농락당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농락당한 건 프로들이었다. 홀마다 잘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와 착시가 있어서다. 골프 데이터 전문업체 CNPS에 따르면 당시 18개 홀에서 퍼팅 이득타수가 플러스(+)로 나온 홀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모든 홀의 그린이 선수의 타수를 까먹었다는 얘기다. OK 받기는 쉽지만 ‘홀 인’하기는 어려운 그린인 것이다.
이글 허락하지 않은 홀
9번홀 티잉 구역에 섰다. 너른 페어웨이 왼쪽에는 깎아지르는 듯한 바위 절벽이, 오른쪽에는 거대한 호수가 놓여 있다. 회백색 기암절벽은 미국 여행 때 어느 공원에서 본 그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레드티에서 핀까지 거리는 370m(화이트티 446m). 이전 8개 홀에서 드라이버는 전부 ‘멀리 똑바로’였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를 공략하라”는 캐디의 조언은 들은 체 만 체.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틀었다. 핀 방향이 오른쪽인 만큼 조금이라도 가까이 붙여볼 심산에서다.

‘교만은 골프의 적’이란 말을 다시 한번 새겨넣었다. 오른쪽을 겨냥한 데다 살짝 슬라이스까지 더해지자 공은 오른쪽 두 번째 벙커에 빠졌다. “저 넓은 페어웨이를 두고 바보같이 벙커에 빠지다니…”란 자책이 절로 나왔다. 노 대표는 “오른쪽을 노리는 골퍼를 혼내주려고 그 자리에 벙커를 배치한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7번 아이언으로 레이업한 다음 5번 우드, 4번 유틸리티로 그린 앞 50m 자리에 공을 보냈다. 9번홀의 그린은 이 골프장에서 보기 드물게 앞쪽이 움푹 꺼져 있는 2단 그린이다. 52도 웨지를 잡고 그린 가운데 꽂혀 있는 핀을 노렸다. 하지만 공은 단단한 내리막 그린을 맞고 오른쪽 벙커에 빠졌다. 결국 6온, 투퍼트. 트리플보기로 참담하게 홀아웃했다.

설계자답게 노 대표는 페어웨이 왼쪽을 노려 2온 2퍼트로 버디를 잡아냈다. 그는 “싸우려고만 하지 않으면 잘 풀리는 홀인데 많은 골퍼가 잘하려고 덤비다가 망친다”며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인생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홀”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E1 채리티오픈 3라운드 내내 파5인 이 홀에서 이글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승자인 방신실도 이 홀에서 질러가는 전략을 쓰지 않았다. KLPGA투어 최고 장타자인 그도 페어웨이 왼쪽으로 안전하게 3온을 노렸다.

호수에 그린만 덩그러니 떠 있는 아일랜드홀 12번홀(파3)은 성문안CC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소그래스TPC에서 수많은 골퍼를 울리는 17번홀과 닮은꼴로, 실제 그린 크기에 비해 훨씬 작아 보이는 착시를 이용해 골퍼의 멘털을 흔든다. 이 골프장의 마스코트는 16번홀 티잉구역 근처에 있는 ‘두꺼비 바위’다. 공사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사람이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무료 발렛 서비스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티 간격이 10분이라 앞뒤 팀을 마주칠 일이 없다. 프리미엄 퍼블릭답게 비싸다.

원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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