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됐나"…'주거복지 천국'의 추락

입력 2023-08-15 18:28   수정 2023-08-28 16:3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삼각형 모양의 인공섬 제이뷔르허르에일란트. 기존 산업단지를 주거·업무지구 등으로 재개발하는 곳으로, 세련된 건축 디자인과 친환경 자전거도시 콘셉트로 인기가 많다. 전체 주택(5500가구)의 30%에 달하는 사회주택(공공임대)의 임차료(방 2~3개 기준)는 560~700유로다. 암스테르담 평균 임차료(약 1410유로)의 절반을 밑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시민에게 이 사회주택 입주는 ‘그림의 떡’이다. 입주 대기 기간이 등록 시점부터 평균 12년6개월에 달해서다. 란즈미어 등 암스테르담 인근은 대기 기간이 20년이 넘는다.

‘공공임대의 천국’ ‘주거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던 네덜란드가 역대급 주거난에 직면했다. 글로벌 연구기관 ABF리서치가 올초 네덜란드 정부 의뢰로 한 조사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주택 부족은 지난해 31만5000가구에서 올해 39만 가구로 23.8% 늘었다.

지난 10년간 이민과 가족 분화 등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했지만 사회주택 공급은 태부족이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사회주택은 230만50가구로, 2015년(230만4505가구)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990년대 41%에 달한 사회주택 비율은 지난해 28.6%로 내려앉았다.

민간 사회주택 공급 업체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과 등 인기영합주의 정책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리처드 로널드 암스테르담대 교수는 “공사 기간만 2년 이상 걸리는 비탄력적인 공급 구조에서 민간 기업이 사회주택을 외면하자 임차료가 폭등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가 반복되는 국내 임대차시장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민간 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진미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거정책연구센터장은 “기업형 임대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고 일관된 정책을 운용해 민간과 공공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집주인 부담금' 걷자 임대주택 급감…결국 올해 폐지
네덜란드는 120년이 넘는 사회주택 역사를 가진 주거복지 선진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시장의 3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주택 품질이 좋아 ‘사회적 낙인효과’가 없고, 소셜믹스(임대와 분양 혼합 배치)도 잘 이뤄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네덜란드가 ‘사회주택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 11일 찾은 암스테르담은 이런 수식어와 딴판이었다. 높은 민간 임차료, 긴 사회주택 대기 시간 등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청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루벤(29)은 “암스테르담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40㎞가량 떨어진 라인스뷔르흐로 옮겼다”며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된 부모 세대에선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느냐’는 한탄이 나온다”고 했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등에선 주거난에 항의하는 시위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사회주택과 민간주택 사이에 낀 중산층을 ‘잠재적 홈리스’로 부를 정도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은 좁은데 가구 분화와 고령화·도시화, 이민자 유입 등으로 주택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환경 규제 등으로 공급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사회주택 공급업체를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자 주거난에 불이 붙었다는 게 전문가의 평가다.

2013년 도입한 ‘집주인 부담금’은 50가구 이상의 사회주택을 임대하는 법인·개인에게 주택 가치의 일정 비율을 매년 세금으로 내게 하는 제도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사회주택 업체들이 집주인 부담금으로 낸 비용은 12억유로(약 1조7300억원)에 달했다. 부담금 때문에 소득이 줄자 업체들은 보유한 사회주택을 팔거나 집이 망가져도 수리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택 공급업체를 대표하는 AEDES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네덜란드 사회주택은 10만 가구 이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거난이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결국 정부는 올해부터 이 부담금을 폐지했다. 사회주택협회인 AFWC의 스티븐 크롬하우트 선임연구원은 “암스테르담은 시와 협회가 합의해 2년 전부터 집주인 부담금을 적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공급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도 “사회주택이 여전히 부족해 타깃층을 일반 시민에서 빈곤층과 난민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 선진국’이란 수식어에 취한 정부의 해이함도 한몫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1년 주택총괄 부처를 폐지하고 환경부 등에 업무를 이관했다.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지난해에야 부처를 부활시켰다.

암스테르담=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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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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