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전도사 스토킹한 부목사…교회는 알면서도 방치했다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3-08-20 11:18   수정 2023-08-20 11:19


직장 내 괴롭힘 '악질 가해자'의 80%는 사장과 지연·학연·혈연으로 얽힌 인물들이거나 최측근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때문에 피해자 열 중 아홉은 신고 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사용자가 방치했다가는 가해자와 함께 손해배상을 부담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잇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업주가 회사 내부 측근만 믿고 괴롭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경우 회사의 인사관리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득 얻기 위한 '전략적 가해'가 감정적 가해의 2배
20일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2007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악질 가해자'의 피해자 242명, 목격자 159명 등 총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FGI(심층 면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악질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80%는 사용자거나 관계인, 측근으로 나타났다. '악질 가해자'는 FGI에 참여한 피해자와 신고자의 진술을 기준으로 '집요하고 반복적'이거나 '약한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케이스로 선정했다. 악질 가해자를 별도로 분류해 연구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악질 가해자가 '사용자 본인'이거나 '일가친척'인 경우는 10%에 달했다. 선후배거나 동향 출신인 경우도 17.5%로 나타나 27.5%는 사용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밖에 '사용자의 측근'이거나 '측근의 측근'인 경우도 51.6%였다. 사용자나 개인적 관계가 없는 악질 가해자는 18.2%에 그쳤다.


피해자 242명이 악질 가해자를 사용자의 측근으로 판단한 이유는 '사용자의 개인사를 일일이 챙겨서'와 '골프모임 등 사장의 사적 모임에 자주 동행'이 각각 162명(83.2%), 158명(80.6%)로 가장 많았다.

가해자의 유형을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괴롭힘을 이용하는 '전략적 가해자'와 자제력이 부족해 괴롭히는 '감정적 가해자'로 구분한 결과, '전략적 가해자'는 265명으로 '감정적 가해자' 136명의 두 배에 달했다.

특히 사용자 본인이나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가해자는 '감정적 가해' 유형이 더 많았다.

반면 사용자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측근'이나 '측근의 측근'들은 '전략적 가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략적 가해자들은 업무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괴롭힘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된 행위 유형은 △업무 떠넘기기 △실적 강탈 △불필요한 추가 근무시키기 순이었다. 반면 감정적 가해자는 개인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괴롭힘이 많았다. △개인 심부름 지시가 가장 많았으며 △폭언 △성희롱 △자신이 사용자에게 하는 만큼의 수발 강요도 적지 않는 등 '분풀이식 괴롭힘'의 비중이 높았다.


결국 이런 악질 가해 피해자의 91.7%는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았다. 사실상 자포자기 하면서 직장 내의 괴롭힘 분위기가 고착된 셈이다.

서유정 연구원은 "악질 가해자 중 사용자 본인 또는 측근의 비중이 높은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이 어려움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괴롭힘 신고에 의존하는 사후 구제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여성 전도사 괴롭힌 부목사 방치...법원 "교회, 1500만원 배상하라"
퇴사한 근로자가 악질 가해자를 방치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인정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15 민사부는 최근 교회 전도사로 일하던 A씨가 교회와 부목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인격권침해금지 등 청구의 소에서 A의 손을 들어주고 "교회와 B는 A에게 공동으로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부목사 B는 2020년 6월부터 입사한지 4개월 된 여성 전도사 A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통화를 시도하거나 A를 '순결' '꽃'으로 묘사하는 메시지가 담긴 카카오톡 기프티콘이나 "사랑의 방아쇠를 당겨달라"는 등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토킹을 하기 시작했다. 휴무일에는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의 카페로 나오라며 만남을 강요했다.

심지어 다른 전도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얼굴을 들이밀거나, 이동하는 A의 팔을 잡아당기거나, 머리에 꽂혀진 핀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일삼았다. 자신을 피해 주차한 A의 차 옆에 굳이 주차를 하고 기다리거나 A의 사무실로 내려와 기다리는 등 스토킹했다. 교인들마저 "지나치다"고 증언했다.

참다못한 A는 교회 목사를 찾아 조치해달라고 했지만, 교회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2021년 5월 교회를 퇴사했다. A는 B를 강제추행,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해 공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B는 적반하장 식으로 A의 지인에게 "A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결국 A는 교회에 대해서 "불법행위를 방관해 인격권을 침해했고 고용계약상 보호의무를 위반했다"며 "B와 함께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법원은 B의 추행과 사무집행 사이에 '업무상 관련성'이 있다며 교회가 A에게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는 부목사로 일을 처리하면서 전도사와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준 적이 없는 A의 연락처를 획득한 것은 교회를 매개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제추행이나 스토킹은 주로 교회 사무실 근처 복도, 식당, 주차장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교회의 관리 감독이 미치는 공간이고, 대체로 발생 시간도 사무처리하는 과정과 근접하다"고 꼬집었다.

함께 판결을 받은 B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외에도 문자, 카톡 등 SNS메시지를 보내거나 만남을 강요하지 말고, 이를 위반할 경우 1일에 100만원씩 지급하라고도 판시했다.

사업주는 민법 등에 따라 근로자의 생명·건강 등에 관한 보호시설을 하는 등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언행의 내용, 지속 기간, 피해자의 반응과 고통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회사가 이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게 최근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덮기 보다 지체없이 조사하고, 충분한 보호조치를 우선 취하는 등 사후 조치는 를 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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