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절반 성공에 그친 규제샌드박스…"4년 희망고문 당한 꼴"

입력 2023-08-20 15:58   수정 2023-08-20 16:11


올해로 시행 5년 차를 맞은 규제 샌드박스의 성과를 놓고 경제계에서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규제에 가로막혀 있는 신기술·제품의 사업화를 돕는 혁신 도우미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실질적인 규제 혁파 없이 실적 쌓기에 급급한 보여주기식 제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대 4년의 시한부 사업허용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스타트업과 같은 신생 기업들은 기약 없는 희망 고문에 시달리기 일쑤다. 정부가 내거는 사업 승인 조건이 오히려 새로운 규제로 변질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 도입 취지인 ‘혁신 실험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부분 시한부 사업 허용
규제 샌드박스는 적극해석, 임시허가, 실증특례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중 전체 사업승인 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실증특례는 법으로 금지돼 있거나 안전성이 불확실한 사업을 조건부로 허용해 준다. 문제는 실증특례 기한이다. 최대 4년 동안만 허용된다. 4년 이후에 관련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규제샌드박스 제도 수용자 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 승인 기업 중 ‘규제 샌드박스 종료 이후 사업 지속성의 불확실성에 때문에 불안하다’고 답한 비율이 70.4%에 달했다.

올해부터 이 4년의 시한부 실증특례 올가미에 걸린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 첫해인 2019년 승인을 받은 195건 중 29건(14.9%)이 해당 사업을 접었다. 경영난 등 사업자 귀책으로 관련 사업을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4년 시한부’ 고개를 넘지 못했다.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 관련 실증 특례를 받은 바이오업체 대부분이 관련 사업을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실증특례를 거친 업체가 사업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유로 정부가 내세운 부가 조건을 꼽는다. 정부는 해당 기업에 실증특례를 내주면서 여러 조건을 건다. 제이지인더스트리는 2019년 버스 외부에 발광다이오드(LED) 광고판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버스 10대에만 운영해보라는 조건을 단 것이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수익성과 규제 완화 필요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결국 이 업체는 승인 후 1년 만에 폐업했다.

2019년에 실증특례를 받은 뒤 아직 사업을 하는 업체 67곳(34.3%)의 사정도 비슷하다. 대부분 1년 안에 관련 법이 바뀌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다. 공유숙박 업체 위홈은 2019년 실증특례 승인을 받아 2020년 7월 서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내년 7월에 실증특례가 끝난다. 그런데 조건이 ‘서울 1~9호선 지하철역 반경 1km 이내’다. 조상구 위홈 대표는 “내국민 대상 공유숙박이 금지라서 실증특례를 받았지만 지금 같은 조건으로는 규제받지 않은 해외업체 에어비앤비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에어비앤비의 국내 공유숙박 시장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안정성, 형평성 등의 문제 때문에 부가 조건을 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적인 한계”라고 설명했다.
“더 혁신적인 규제 철폐 대책 필요”
정부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증특례 4년 시한부’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자가 규제 정비를 신청한 뒤 필요성이 인정되면 실증특례를 임시허가로 전환해 주는 제도를 지난해 도입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폐차 플랫폼 업체 조인스오토만 유일하게 이 제도를 적용받았다. 2020년 운전사가 택시운전자격 취득 전 임시로 가명 택시 운행을 할 수 있도록 실증특례를 받은 KM솔루션은 지난해 정부에 2년 연장을 요청했지만 올해 말까지 조기 종료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규제샌드박스 연장이 쉽지 않다. 실증특례 기간이 1년 미만 남은 한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 조건이 워낙 빡빡해 사업성을 입증하긴 어려운 기업은 규제 샌드박스 연장이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규제 샌드박스로 규제가 풀렸지만 또 다른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접은 경우도 있다. 블루투스 방식의 전자저울을 개발한 그린스케일은 2019년 정부의 적극해석으로 ‘규제 없음’ 판정을 받았지만 관련 인증 제도가 없어 결국 폐업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이노도 비슷하다. 이 업체는 실증특례 승인도 받고 관련 규제도 없어졌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규제 완화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해 심장 관리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원격 의료 금지에 수가 책정이 불가능해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실증특례 기간이 끝나면 정부가 정식 허가를 내주기 어려운 이유를 직접 입증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도 “정부의 엄격한 심사로 실증특례 승인을 해줬는데 시행 기간 문제가 없다면 관련 규제를 강제로 풀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이시은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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