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바빴던 지난 5년, 특히나 바빴던 2023년, 잠깐 숨 돌릴 시간이 생겨 지난날들을 회상해봤습니다.2001년 초등학교 입학 후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중, 작곡을 배우라고 권유받은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이 바로 ‘음악가의 길이 나의 길’이란 걸 처음 느낀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당연한 듯 이 길을 걸었습니다. 졸업을 1년 앞둔 2006년, 중학생이 되면 음악을 배우러 서울로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변에 음악가는 아무도 없었고 그러라고 시킨 사람도 없었죠. 그저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홀로 길을 떠났습니다.
예원학교 입학식 때 만난 친구들이 평생 처음 만난 또래 음악가와 예술가였습니다. 개울, 뒷산, PC방, 운동장밖에 없었던 제 주변은 갑자기 음악과 예술로 뒤덮였습니다.
서울에서의 삶도 대구 외곽 촌동네에서 자란 저에게는 큰 변화였고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특수한 입시제도와 그로 인해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교육방식에 저는 자퇴하고 독일로 향하는 비행편에 올랐습니다.
중학교 시절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기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들 어릴 적부터 음악 세계를 접한 게 부러웠고, 무엇보다 기악과에는 좋은 교육 시스템이 많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각종 대회와 정기연주회 오디션 등 눈앞에 보이는 목표들이 있었거든요. 반면 시골에서 올라와 갑자기 작곡 전공 학생이 된 저에게는 누구도 뭘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모르셨을 겁니다. 대회도, 오디션도, 연주 기회도 없었습니다. 당시엔 작곡이란 것 자체가 미지의 세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기악과 친구들은 솔리스트 오디션을 준비하는데, 작곡 전공이란 이유로 정기연주회 때 강제로 합창을 하는 게 싫어서 교향곡 하나를 제멋대로 써 갔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음악 자체가 무한한 미지의 세계이자 미궁’이라는 걸요. 예술로 가는 길은 하나의 정답과 같은 길이 아니라 무수하게 많은 비포장도로가 있고, 예술가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재와 과거의 대가들이 방향을 제시해주지만, 그걸 참고해 길을 완성하는 것은 각 예술가의 몫이라는 것도요.
이 글을 쓰다 보니 여태 ‘맨땅에 헤딩하며 살았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미지의 길이었기에 오히려 마음 편히 부딪쳐 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저는 아마 단순하게 새로운 길,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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