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딴 것도 예술입니다…다들 아는 예술은 죽은 거니까"

입력 2023-08-30 18:42   수정 2023-08-31 00:59


“이딴 걸 누가 예술이라 하겠냐, 하지만 난 이걸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개념미술의 대가 성능경(79)은 얼마 전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외쳤다. 그러더니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며 셔츠를 벗어 던졌다. 65년 전 중학생 때 배운 스트레칭을 보여주겠다더니, 다리 찢기부터 팔벌려뛰기까지 10여 분간 분주하게 몸을 굴렸다. 그는 1970년대부터 쭉 이어온 이런 행위예술로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날 스트레칭도 그가 1970년대 사진으로 남긴 작품 ‘수축과 팽창’이었다. 성능경은 바닥에 바짝 드러누웠다가 뜀뛰는 스트레칭 동작을 통해 민주주의가 억압받던 그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예술가의 무력감을 표현했다. 그리곤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코닥 카메라로 찍어 남겼다.

그의 작품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을 통해 9월 1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된다.
○반세기 동안 세 번의 개인전
갤러리현대에서는 성능경의 예술과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그가 남긴 예술 사진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 제목은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 실제 사진학적 관점에서 ‘망한 결과물’이 많이 공개됐다.

성능경은 단색화가들이 화단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반 ‘실험미술’이란 새로운 장르를 들고나온 작가다. 파격적인 행위예술을 하고, 그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 인화해 전시했다. 또 신문과 사진을 잘라 붙이거나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기존 매체를 다른 시각으로 뒤집었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세 번째 상업화랑 전시로 대표작은 1층 입구 전체를 차지한 ‘현장’ 시리즈다. 성능경이 신문을 읽으며 신문 속 보도사진을 오린 후 그 위에 세필묵으로 하얗게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젊은 시절의 성능경은 신문의 보도사진을 오려내 그림을 그리고 당초 보도 취지를 뒤트는 작업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신문 쪼가리들이 ‘현장’ 시리즈를 낳았다.
○작품명 짓기도 파격적 퍼포먼스
그는 작품 공개 당일에도 파격을 선보였다. 그는 선글라스와 샤워캡을 쓰더니 “작명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고 소리쳤다. 성능경은 연필 한 자루를 들더니 작품에 거침없이 이름을 달았다. 다른 작가들은 제목 붙이는 게 어렵다는데 성능경은 달랐다. 사진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갤러리의 벽면에 낙서하듯 이름을 끄적였다. 작명은 직관적이다. 엄마와 아들이 찍힌 보도사진에는 ‘모자’라는 이름을 짓거나, 당시 기후를 보여주려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뒤에 야구장이 보인다는 이유로 ‘잠실야구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성능경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가운데 신문 읽기가 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각자 다른 부분의 신문을 읽는 것이다. 1974년 시작한 이 퍼포먼스는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퍼포먼스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신문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 이슈가 됐다. 이후 성능경은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가 됐다. 성능경은 오는 9월 6일 서울 고덕동에서 역대 최다 인원인 100명과 함께 신문 읽기에 나선다.

성능경은 “성능경에게 예술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몰라.” 그는 “모두가 아는 예술은 개념예술가에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모르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전시는 오는 10월 8일까지 열린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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