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지휘 여제, 완벽한 솜씨로 '反戰'을 연주하다

입력 2023-09-18 18:34   수정 2023-09-19 00:32


호기심과 기대감. 이 두 가지야말로 클래식 애호가를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유력한 동인일 것이다. 지난 17일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옥사나 리니우는 ‘금녀의 벽’을 깨부순 여성 지휘자다. 2021년 여름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45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발탁됐고, 이탈리아 시립 오페라 극장 259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음악감독(볼로냐 극장)이란 기록도 갖고 있다. 협연자인 세르게이 하차투리안도 200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16세)와 200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19세)를 석권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다. 수차례 내한 무대를 통해 탁월한 테크닉과 특별한 음악성을 겸비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하차투리안이 연주한 곡은 자신과 성이 같은 아람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와 더불어 옛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힌 아람 하차투리안의 음악에는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카프카스 지역 민속음악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의 연주에서는 완만하고 서정적인 선율은 물론 신속하고 다이내믹한 악구의 세밀한 음형에서조차 토속적 억양 내지 뉘앙스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아무리 까다롭고 빠른 패시지도 능숙하고 여유롭게 받아 넘기는 빼어난 테크닉, 악곡 전편을 염두에 두고 표현의 강약과 완급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주도면밀한 음악성까지 갖춘 그의 연주는 필자가 이제까지 접한 대여섯 번의 같은 곡 연주 중 단연 최고였다.

하차투리안의 명연을 뒷받침한 리니우의 솜씨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리듬 및 다이내믹의 처리에서 다소 온건한 접근법을 견지하면서 협연자를 충분히 배려하며 악곡을 이루는 모든 부분과 요소를 잘 조율했다.

그의 역량이 온전히 드러난 것은 2부에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의 최대 역작인 ‘교향곡 제2번’에서였다. 이 거대한 교향곡을 리니우는 명쾌하고도 매력적으로 형상화했다. 가장 돋보인 면은 작곡가 특유의 호흡이 긴 선율을 재단하는 솜씨였다. 특히 현악 선율의 굴곡과 호흡을 섬세하고도 풍부하게 가꿔내는 손길이 남달랐다. 이 덕분에 작품 특유의 낭만적 흐름이 효과적으로 부각됐다.

대편성 관현악의 모든 악기군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균형감각도 겸비했다. 지나치게 장대해 종종 전편을 관류하는 내러티브가 어그러지곤 하는 이 대작에서 기승전결의 흐름을 조리 있게 짚어내며 탄탄하게 이끌어가는 거시적 안목까지 갖추고 있었다.

다만 스케르초 악장의 전환부 등에서 목관부 리듬이 명확하게 부각되지 않거나 중간중간 저음부의 중량감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등의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객원 지휘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안하면 납득하고도 남을 결과물이었다. 근래 국립심포니 공연 가운데 최상의 성과라고 할 만한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 첫머리에 연주된 오르킨의 ‘밤의 기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바이올린 솔로와 죽음을 암시하는 탐탐(커다란 징을 연상시키는 타악기)의 울림으로 출발해 비교적 단순한 선율을 마치 기도처럼 반복해서 다뤄나가는 그 곡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그런 참사가 이 시대에 벌어져야 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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