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로 '감옥'처럼 변한 집… "탈출기 3년으로 책 냈죠" [책마을 사람들]

입력 2023-09-25 16:11   수정 2023-09-28 21:14



현대인한테 집은 유독 각별하다. 필요한 돈의 단위부터 다르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대부분의 사회초년생에게 전세 보증금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다. 직장과 가까운지, 녹물이 나오는지 등 일상의 편의부터 목숨의 안녕까지 영향을 미친다. '집을 구하며 어른이 됐다'는 말이 누리꾼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유다.

집을 안전하게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2010년대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세입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부터 지난해 '빌라 왕 사태'까지.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 없이 피해자들을 속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사례들이 이어졌다.



"전세 사기를 당하는 순간 집은 감옥이 됐습니다." <루나의 전세 역전>을 출간한 홍인혜 작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평범한 시민이 전세 사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시시한 영웅 이야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부제는 '전세 사기 100% 충격 실화'. 압류부터 공매에 이른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만화와 에세이로 엮었다.

홍 작가는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약 20년째 인터넷 블로그에 만화를 그렸고, 이 중 2021년에 27화에 걸쳐 연재한 '루나의 전세 역전' 웹툰은 누적 463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5년에 60㎡(약 19평) 투룸 구조 빌라에 입주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기존에 살던 원룸에 비해 넓고 채광도 우수해 '운명의 집'이라고 느껴졌다고 한다. 얼마 뒤 임차인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집주인은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고, 집이 압류돼 공매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복잡한 채무 관계가 얽힌 집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체납세금에 대한 가산금이 쌓여갈수록, 홍 작가가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 보증금이 줄어드는 판국이었다. 공매가 시작되자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다. 홍 작가는 "세금을 체납한 사람이 부동산 압류 전 세입자를 받고, 집이 공매에 넘어가면 전세금으로 세금을 털어내는 수법"이라며 자신이 사기에 휘말렸다고 판단했다.

"가장 곤욕스러운 부분은 그 집 안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는 점이었어요. 눈을 뜬 순간부터 감을 때까지 사기를 당했다는 자책감과 분노, 불안감이 맴돌았죠."

3년간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홍 작가는 경매·공매 관련 서적을 읽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모았다. 결국 직접 공매에 뛰어들어 집을 낙찰받았다. 그는 "전세금의 운명을 남들의 손에 맡기기보단, 빚을 내서라도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건에 엮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 작가는 "현실적으로 세입자 각자가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실제 집 소유주가 맞는지부터 세금 체납 여부까지 확인하는 '깐깐한 세입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의 경우 근처 비슷한 규모의 매물이 얼마에 거래됐는지 일일이 시세를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세 사기로 인한 공방 3년, 이후 '내 집'이 된 채 보낸 4년. 홍 작가는 그렇게 7년을 산 집과 지난해 작별했다. 그는 "마치 오래된 연인 같은 애증의 정을 느꼈다"며 "한 때는 빨리 보증금을 받고 탈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내 집이 되고 나니까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고 했다.

홍 작가는 새롭게 이사한 집에서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까. "제 인생에 앞으로 이런 무거운 사건이 또 일어날까요? 앞으로는 제 실제 경험담이 아닌 허구의 픽션 만화를 그려보고 싶습니다."(웃음)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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