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놓인 사형제도①] 부활vs폐지···‘최악’과 ‘차악’의 끝없는 논쟁 ‘사형제도’

입력 2023-10-10 09:43   수정 2023-10-10 09:44



선지(選支)에 ‘최선’은 없는 문제다. 여느 딜레마가 그렇듯 사형제의 부활과 폐지를 논하는 문제는 둘 중 무엇을 ‘최악’으로 볼 것인가에 달렸다. 26년째 존폐의 갈림길에서 서성인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1997년 마지막 사형집행…그 후 남은 59명의 사형수
국내 사형집행의 역사는 1997년 12월 30일을 기점으로 멈춰져 있다. 당시 서울구치소를 비롯한 전국 총 4곳의 시설에서 사형수 23명에 대해 이뤄진 형 집행이 마지막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사형은 선고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으며, 형 미이행 사형수와 갖은 담론만이 과제처럼 남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사형제와 대체 형벌을 연구해온 김대근 연구원은 “2020년 기준 국내 60명이었던 사형확정자 중 최근 한 명이 사망해 현재 국내에는 59명의 사형수가 존재한다”며 “그 중 4명은 군 교도소, 55명은 법무부 민간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전했다.



김 연구원이 발행한 <사형제 폐지에 따른 법령 정비 및 대체 형벌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반영한 56명의 사형수 중 19명이 1990년대에 사형을 확정 받았으며, 이후 △2000년대 34명 △2010년대-2020년대 도합 3명으로 점차 사형 선고 빈도가 크게 급감하는 양상을 보였다. 2005년을 기점으로 최근까지의 사형 확정 건수는 연간 최대 2건 이하까지 감소했다. 97년의 마지막 사례 이후 사형집행이 멈췄을 뿐 아니라 그 확정 선고 횟수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유명무실한 사형제, 들끓는 국민 여론
국내 사형제가 점차 폐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이 2022년 7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9%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사형제 폐지에 표를 던진 인원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며, 8%는 선택을 유보했다.



이러한 여론은 일순간의 현상이라 볼 수 없다. 수년째 진행돼 온 한국 갤럽의 동일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를 택한 비중은 △1994년 9월 70% △2003년 9월 52% △2012년 9월 79% △2015년 7월 63% △2018년 8월 69%로 29년째 과반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일년도 4월 수원 20대 여성 살해사건, 7월 제주 올레길 40대 여성 살해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강력 범죄의 발생 직후였던 2012년의 유지 의견은 80%에 육박했다.

2023년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연이어 벌어진 수차례의 흉기 난동 사건과 강력 성범죄, 강력범죄자의 출소 후 재범 사건 등으로 사형제 유지 및 집행 재개에 대한 국민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강력 범죄에 대한 형벌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이 너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낮은 수준의 처벌로 인해 사회 전반에 한국은 ‘나쁜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번지게 됐다”며 “그런 현실이 불합리적이라는 인식이 수면 아래 있다가 강력 범죄가 발생하게 되면 문제의식으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력 범죄 발생 후 사형제 유지 여론 확대는) 일반적인 현상이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여론은 합리적인 긴 숙고의 결과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사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다소 즉흥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며 “강력 범죄가 증가하면 집행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오판으로 억울한 선고를 받은 사람의 사연이 밝혀지면 사형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여론재판이 위험한 것처럼, 여론에 의해 법을 바꾸는 것도 위험하기에 이러한 흐름이 국가 법제나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는 없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가 본 사형제] 사형제 존치돼야…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글쎄



연일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 전문가들은 사형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년째 사형집행이 멈춘 상태다 보니 법원에서 사형 판결 선고 자체를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선고하게 된 데다, 선고해도 사실상 휴지가 되는 상황”이라며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 보니 흉악범죄에 있어서도 형벌의 범죄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실 사형 판결은 형사소송법 규정상 형이 확정되면 6개월 내에 집행해야 한다는 사형집행 시효가 있다”며 “사형집행은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 아닌 의무”라 강조했다. 이어 “최근 사형의 대안이라 말이 나오고 있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교도소라는 건 사람을 교화시켜, 사회에 나가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도하는 기능을 하는 곳인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교화의 가능성에 희망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재소자가 석방이라는 희망이 없는 이상 수감생활을 성실히 하리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풀었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사형제는 우리 법상 분명히 존재하고, 시행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으레 사형수의 인권을 얘기하곤 하는데, 이는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살인범의 인권을 이해하기 위해 피해자의 인권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덧붙여 “세상에는 정말로 교화의 가능성이 없는 범죄자들이 있다.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형벌의 끝이라는 논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 또한 대단히 소모적일 뿐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대책이다”고 전했다.

홍 교수는 “피해자와 유족은 범죄로 가족의 삶이 모두 붕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집행된다면 어쨌든 ‘국가가 나를 대신해 범죄자에게 벌을 주었다.’ 그 사실 하나로 위로를 받고 그나마 덜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 인권론자는 국가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가가 범죄자를 처형하지 않으면 누가 처형하나. 이 때문에 최근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도 자꾸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며 “사적 복수는 적절한 답이 아니니 공권력이 처벌을 대행해줘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DNA 기술의 발달로 오판의 위험성도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기에 국가의 사형집행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본 사형제] 사형집행 가능성·필요성 전혀 없어… 실효성 증명되지 않기 때문



반면 사형집행 재개의 가능성과 필요성이 전무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김대근 연구원은 “최근 사형제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현상이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사형시설 점검 지시가 실제 사형집행으로 이어지진 않으리라 본다”며 “도덕적, 심리적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EU와 체결한 조약 중 사형 미집행을 조건으로 체결한 것도 많기에 현재 집행하게 되면 외교적 분쟁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사형집행의 필요성은 전혀 없다.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얻는 효과가 무엇일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강호순이나 유영철 같은 강력범죄자들이 사형제의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실제 연구 당시 사형수들을 만나 물어보면 범행 당시에 사형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가 격양된 감정에서 범죄를 저질렀기에 형벌을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당시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저 체포에 대한 일차원적인 두려움뿐이었단 얘기를 이구동성으로 한다”며 “그렇기에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는 검증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설령 일부 여파가 있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까지 감수해야 할 특별한 효과는 없다는 게 일반적 상식에 부합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전문가가 본 사형제] 사형이던 형벌 강화던, 선량한 시민 지킬 방안 마련이 최우선



그런가하면 사형제 존폐에 대해 중도적 의견을 내비친 전문가들도 있다. 황도수 교수는 “형벌의 강화는 분명 의미가 있으며, 사형도 때로는 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수단이 반드시 사형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 면에서 어찌 보면 사형제도는 있는데 사실상의 형 집행은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행 제도가 가장 좋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사형제가 아예 없어지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퍼지게 된다. 그러나 현행처럼 그 존재라도 유지한다면 ‘내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에 완전한 폐지 상황과는 다른 예방 효과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장 교수는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살인 이상의 중범죄자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자의 인권보다도 그들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라 짚었다. 이어 “현재에는 사형 집행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같은 형벌이 없기에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데, 무기징역은 후에 가석방돼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무기징역 복역 중 교도소 안에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국가가 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하는 것은 이 같은 재범 발생에 희생될 수 있는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라며 “꼭 사형만이 그 해답은 아닐 것이다. 중범죄자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마련되는 대안들이 선량한 이들을 지키는 데 충분하기만 하다면, 사형제가 폐지된다 해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장유진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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