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후원금 횡령' 윤미향 vs '정대협 폄훼' 박유하 [이슈+]

입력 2023-10-28 20:29   수정 2023-10-28 20:30



"이 싸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할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저와의 싸움입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는 지난 26일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뒤 이같이 말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무죄를 받은 그가 소회를 밝히며 소위 '위안부 운동'을 주도했던 운동 단체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다며 30여년 간 활동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낸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에서다.
대법의 뒤늦은 무죄 판결…檢 고소 8년만
박 교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마녀'로 몰려 대대적인 지탄을 받으며 시작됐던 재판 초기를 회고하면, 큰 관심을 끌지는 않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의 사건에 끝까지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선례가 됐다"며 대법원의 판단을 반기면서도, '지연된 정의'라며 못내 아쉬워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새로운 선택'이 유일하게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상식에 입각한 합리적 판결"이라며 "애초에 박 교수의 저서는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학자로서 견해를 밝힌 것으로 오롯이 학문과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반일주의'를 자극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했다.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반일 정서에 편승해 마녀사냥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성남시장)는 지난 2015년 2월 '제국의 위안부'가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자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라고 썼었다.

금태섭 전 의원은 당시 이 대표가 '책을 읽어보기는 했느냐'는 질문에 "냄새만 맡아도 된다"고 답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이 대표가 역사를 대하는 노골적인 반지성적 태도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민주당에서 '토착왜구', '총선은 한일전' 따위의 혐오 표현이 나오기 시작한 기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라고도 덧붙였다.
'마녀'로 몰렸던 박유하, 대법 '무죄'까지 8년 걸려


박 교수의 무죄 입증을 향한 긴 여정은 지난 2014년 6월 시작됐다. 위안부 피해자 9명은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우리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묘사했다"며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겉으로는 피해자들과 박 교수의 싸움이었지만, 실상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재 정의기억연대)와 박 교수의 싸움이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박 교수가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적으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실관계가 복잡하지 않은 이 사안을 두고 긴 재판을 시작하게 된 데는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위안부 운동을 주도해온 시민단체들의 입김이 결정적이었다. 2013년 7월 출간 조기, 좌우를 가리지 않고 호평받은 '제국의 위안부'는 돌연 '위안부 명예훼손 서적'으로 온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됐다. 정대협이 각종 성명을 통해 박 교수를 비난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당사자주의'를 강조하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해법을 고민했던 박 교수의 진정성은 순식간에 매도당했다. 박 교수가 "이 싸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할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나와의 싸움이었다"고 한 것은 정의기억연대와 정대협이 피해자와의 직접 접촉을 막는 한편, 자신들의 문제 해결 방식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와 관련 "저와 가장 가까웠고 이 두사람에게 비판적이면서도 그 말을 공적으로는 하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고발당한 사실은 '제국의 위안부' 사태의 또 하나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 줄 것"이라고도 했다.
박유하 몰아세웠던 운동 단체가…"우릴 이용해 먹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박 교수를 몰아세웠던 그 단체들이 박 교수 고소 사건 이후 6년 만에 비판의 화살을 되돌려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정대협을 혼자서 이끌어오다시피 한 당시 윤미향 전 정의원 이사장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되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폭로가 나오면서다.

이용수 할머니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신대책협의회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느냐. 저들이 일본의 사죄 배상을 막았다"며 "윤미향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총선에 출마했다"고 했다. 윤미향 당시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국회의원 임기 시작도 전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연 회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정대협(정의연 전신)은 모금이 끝나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배고프다 하니까 '돈 없다'고 하는 단체"라고 했다. 그는 "(정의연은)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해 먹고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면서 "(학생들) 돼지 저금통에서 나오는 돈까지 챙겼다. 위안부 피해자를 도구로 사용했다. 제가 바보같이 이렇게(이용 당했나) 했나. (최근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의 '일탈' 행위는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윤미향 의원은 지난달 2심에서 정의연 후원금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처분받았다.

재판부는 윤 의원의 정의연 자금 중 횡령액을 총 8000여만원으로 인정했고,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비 등 1억 3000만원을 불법 모금했다고 판단했다. 인건비를 허위로 계산해 여성가족부 등에서 국고 보조금 6520만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도 유죄로 봤다.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활동으로 국회의원 배지까지 거머쥐었던 윤 의원은 '영광의 자리'에 제대로 서 보기도 전에 '횡령' 의혹으로 얼룩졌다. 윤 의원에 대한 최종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천착한 두 사람의 운명이 극적으로 엇갈린 셈이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사건과 윤 의원 재판 건에 대해 "이미 세간에 밝혀진, 개인적 혹은 소속 단체의 이익구조 유지를 위한 목적도 주변인들에게는 있었다"며 "저를 고발한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횡령 혐의로 감옥에 구속 중이고,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가 같은 혐의로 징역형 선고를 받았다"고 꼬집었다.
박유하 "위안부 운동의 감춰진 목적은 北 배상"…윤미향은 '친북' 행보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 사건이 북한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법원 판결 이후 밝힌 소회에서 "주변인들은 저의 책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했고 '강제연행'을 부정했다는(물론 이 역시도 정확하지 않다)는 말로 위안부를 둘러싼 '사실'을 문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그들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그들의 해결방식에 대한 저의 이의제기에 불만을 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해가 지나고 나서야 그런 주장의 실제 이유를 알 수 있었다"며 이들의 숨겨진 의도를 추측했다. 그는 "북한과 일본이 수교할 경우 '법적 배상'을 받기 위한 목적이, 그토록 오래 이어진 위안부 문제의 배경에 있었던 것"이라며 "말하자면, 한국이 공식적으로 받지 못했던 식민지 배상을 북한이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 위안부 문제 운동의 감추어진 목적이었다"고 했다.

마침 윤미향 의원은 지난 9월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다 고발당해 수사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지난달 윤 의원이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던 이 사안이 반일주의를 거쳐 '친북 논란'까지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복잡한 역사의 소용돌이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박 교수가 "역사는 단순화하면 할수록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만든다"고 경고한 것 역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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