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1타 PEF' 성공 비결은 '산업 이해도'…시험대 오른 토종 PEF[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3-11-01 07:17  

이 기사는 11월 01일 07:1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마켓인사이트는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사모펀드(PEF)인 토마브라보와 EQT파트너스의 투자 수장을 연이어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토마브라보의 공동 창업자인 올란도 브라보(사진 왼쪽)와 크리스티안 신딩(사진 오른쪽) EQT 최고경영자(CEO)가 주인공이다. 각각 운용하는 전체 자산만 1310억달러(약 176조원)와 1130억유로(약 156조원)에 달한다.

두 인물의 캐릭터는 극명히 갈렸다. 현지에서도 미국 전역을 오가는 활동력으로 '헬리콥터 맨'으로 불리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올란도 브라보는 기자의 질문에 연신 "엑설런트"를 반복하며 특유의 에너지를 내뿜었다. 크리스티안 신딩 대표는 북유럽 특유의 차분하고도 명확한 어조로 사전 준비된 자료 없이 EQT의 철학을 소개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성공 배경으로 꼽는 원동력은 놀랍게도 일치했다. PEF의 역량은 금융 스킬이 아닌 산업 이해도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브라보 "3가지 SW 기업에 집중", EQT "PEF는 기업 오너"
1조원 미만의 자산을 운용하던 미국 내 그저그런 중소형 운용사였던 토마브라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맞자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B2B소프트웨어에만 투자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올란도 브라보는 "운영 측면에서 조금만 손을 대면 혁신기업으로 탈바꿈할 기업들이 산적했다"고 말했다. 176조원을 굴리는 지금도 이들은 어플리케이션, 사이버 인프라, 사이버 보안 세 가지 분야에만 투자한다. 그는 "과거보다 거래 단위에 '0'이 몇개 더 붙었을 뿐 산업 내 잠재력 있는 기업을 찾는 측면에서 23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보는 펀드 설립 초기만 해도 LP들의 항의와 문전박대를 감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소수의 벤처캐피탈(VC)이 손대던 소프트웨어 기업에 PEF로 경영권을 인수하겠다고 하면서다. 지금은 지난해 한 해만에△아나플랜(티커 ANA, 투자금액 13조원) △세일포인트(SAIL, 8조원) △핑아이덴티티(PING, 3조5000억원) 등 총 25조원어치 보안 기업을 쓸어담은 이 분야 가장 큰 손으로 떠올랐다.

EQT파트너스는 PEF가 투자사가 아닌 투자한 기업의 오너가 되야한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스칸디아비아 내 작은 기업들의 오너가 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게 자신들이 해온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수 직후 작성한다는 A4용지 15~20장 분량의 풀포텐션플랜(FPP)을 핵심 노하우로 소개했다. PEF 투자역 뿐 아니라 투자회사의 이사회 및 임원들, 심지어 직원들도 FPP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는 게 그들의 노하우였다.

생생한 성공사례들도 공유했다. 토마브라보는 2019년 37억달러에 인수한 모기지 금융 기술 업체인 엘리 메(Ellie Mae)를 18개월 만에 뉴욕거래소를 운영하는 ICE에 110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 펀드에 출자한 교직원공제회도 400억원을 투자해 원금 대비 4배가 넘는 1700억원을 벌었다. 올해 6월엔 증시 침체 속에서도 아덴자를 미국 나스닥에 105억달러에 매각하는 메가딜을 성사시켰다. 인수 후 2년여만에 두 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브라보는 "우리는 시장이 좋을 때도 안좋을 때도 회수에 성공했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EQT파트너스는 글로벌 반려동물 관리 회사인 IVC에비덴시아(IVC Evidensia)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2011년께 2~3개 국가에 체인을 둔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회사를 약 1억달러 규모에 인수해 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의 회사로 키워냈다. 디지털 전환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영국 최대 펫케어 회사를 인수하는 등 볼트온(유사기업 M&A) 전략이 효과적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고금리에 드러나는 한국PEF의 민낯
이들이 입을 모아 자랑한 또 한가지 핵심 역량은 '황금 인맥'이다. '누구누구와 친하다' 수준의 인맥자랑이 아니다. 막대한 경영진 풀을 갖추고 있다. EQT는 발렌베리가문 기업 출신의 CEO와 경영진을 포트폴리오 회사로 끌어올 수 있는 점이 자사의 경쟁력이라고 소개했다. 발렌베리가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기업 면면만 해도 사브(자동차), 일렉트로룩스(가전), ABB(발전), 에릭슨(통신), 아스트라제네카(제약) 등에 달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출신 임원들을 언제든 C레벨로 모셔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올란도 브라보도 세가지 소프트웨어 분야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이어오면서 이 분야 핵심 인제들과 '멘토-멘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외신에서 일런 머스크의 엑스(옛 트위터) 인수 과정에서 유력한 백기사로 언급된 인물이 브라보였다.

두 펀드는 한국 출자자(LP)들 뿐 아니라 글로벌 LP 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펀드로 꼽힌다. 금리 상승으로 유동성이 죄어지면서 그동안 저금리를 타고 수월하게 포트폴리오를 매각할 수 있었던 PEF들이 점차 회수에 고전하면서 핵심 경쟁력을 가진 두 펀드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PEF 고위 관계자는 "불과 작년까지만해도 글로벌 PEF들이 세계 최대 규모 펀드 조성을 두고 경쟁을 벌였는데 규모를 크게 가져가려던 PEF들이 모두 펀딩에 고전하고 있다"라며 "지금은 LP들이 특정 산업에 전문성을 가진 색채 짙은 PEF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종 PEF의 현 주소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10조원 이상 펀드 조성에 나선 MBK파트너스와 전열 정비에 나선 한앤컴퍼니, 그리고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스카이레이크 등 한국 대표 PEF 모두 대형화에 여념이 없다. 뚜렷한 투자 전략이 있다기보단 그동안 이어진 저금리 '유동성 파티'의 수혜를 누린 곳들이 대부분이다.

하이브, 크래프톤 프리IPO 투자가 '바이아웃 PEF'의 대표적인 딜이었다는 걸 곱씹어봐야 한다. 한국 대표 PEF들이 저물어가는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홈플러스나 글로벌 전기차 전환 길목에서 내리막길을 타는 자동차 공조업체 한온시스템 등을 국내 역대 최대 M&A 최고가에 인수했다가 고전하고 있는 것 자체가 산업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브아웃' 분야 스타 PEF로 알려진 토종 PEF 대표도 산업 이해도를 어떻게 쌓느냐는 질문에 "화학연구원 보고서를 열심히 읽는다"라고 답하는 게 국내 PEF의 수준이기도 하다. "수영장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고 있는 지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격언은 PEF 업계에서도 예외가 없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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