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사장이 제일 많은 현' 후쿠이의 변신

입력 2023-11-06 18:25   수정 2023-11-07 00:42

일본 호쿠리쿠(北陸) 지역의 광역 지방자치단체인 후쿠이현은 ‘일본에서 사장이 제일 많은 현’으로 불린다. 중소기업이 번성한 지역이어서다.

이 지역 중소기업의 본거지 사바에시는 인구 7만 명의 소도시다. 하지만 일본 안경테의 9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20세기 초 농한기 부업으로 시작한 산업이 오늘날 일본 열도를 제패한 주산업이 됐다. ‘에치젠(越前)’으로 불리는 사바에시 주변 지역은 예로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섬유산업단지이기도 하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사바에시의 안경과 섬유산업은 ‘모노즈쿠리(장인정신)’로 대표되는 일본의 제조업 전통을 충실히 따랐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을 끊임없이 단련하다 보니 몸집은 작지만 기술력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강소기업’이 됐다.
강소기업만으로는 안 된다
1990년대 이후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저가 공세에 후쿠이 지역 기업들은 강소기업에 안주해서는 생존이 불투명한 시대가 왔음을 실감하게 됐다. 인공지능(AI), 전기차 등의 등장이 촉발한 산업의 변화 속도 또한 예상을 뛰어넘었다.

1992년 4996억엔(약 4조5227억원)이었던 이 지역의 섬유 출하액은 오늘날 절반 이하로 줄었다. 안경 관련 제조업의 매출도 1992년 1144억엔에서 2011년 539억엔으로 반토막 났다. 900여 개였던 관련 기업은 500개로 감소했다.

후쿠이 지역 중소기업들이 강소기업을 넘어 차세대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첨단 강소기업’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한 배경이다. 이들은 의료·헬스케어와 우주·항공산업으로 진화하는 길을 택했다.

안경, 섬유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실을 뽑고, 짜고, 가열하고, 물들이는 섬유산업 공정은 제조 기술의 백화점으로 불린다. 안경산업은 신체에 착용감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설계력과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티탄을 가공하는 기술이 결합한 산업이다. 각종 의료기기와 항공기, 인공위성이 요구하는 기술력과 딱 들어맞았다.

기술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산업 구조가 바뀌었다고 해도 대를 이어 갈고닦은 기술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기술 활용해 첨단산업으로
일본의 인기 드라마 ‘변두리로켓’의 실제 모델로 1944년 설립된 섬유회사 후쿠이다테아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장·혈관 재생 패치와 인공혈관을 개발했다. 자체적인 섬유 가공 기술과 비단을 활용해서다.

이 지역 최대 섬유기업인 세이렌은 의료와 우주항공, 스포츠 분야에 진출했고, 여성 속옷 전문기업인 군제는 재생의료산업에 뛰어들었다. 섬유회사인 신도와 미쓰야가 개발한 엔진 부품용 시트는 에어버스의 소형 기종 ‘A320neo’에 납품된다.

일본 최대 안경테 메이커인 샤르망과 안경 부품 제조사인 와카요시제작소는 의료·헬스케어산업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안경 제작 기계를 만드는 사바에정밀기계는 후쿠이현과 공동으로 일본 최초의 ‘현립 인공위성 발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 도시도 지역을 대표하던 주력 산업이 쇠락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한국의 지역산업 역시 변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갈림길에 서 있다. 후쿠이현이 걸어가는 길을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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