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천재로 태어난 아이, 둔재로 키우지 마라

입력 2023-11-07 11:38   수정 2023-11-07 11:38


결혼하던 해 아들을 얻고 삼 년 뒤에 딸을 얻었다. 직원회식 중에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들었다. 축하 잔을 물리치지 못해 만취한 채 아내가 입원한 산부인과에 갔다. 몸을 일으키려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니 안쓰러워 머뭇거리자 어머니가 느닷없이 “왜? 딸 낳아 서운하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 며칠 지나 아버지가 호출했다. 같이 앉은 어머니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다고 눈짓했다. 아버지는 내가 방에 들어서자 “바보 같은 놈”이라고 역정부터 냈다.

아버지는 “세 여인에게 상처만 주는 못난 짓을 했다. 사내답지 못하다”라며 당신이 기대했던 자식의 행동을 일일이 제시했다. 바라지하는 어머니에게 고마운 인사를 먼저 해야 했다. 아내의 건강을 살피고 애썼다는 말을 했어야 옳다. 아이를 안아준 뒤 순산(順産)을 축하하고 소중한 딸을 얻게 돼 ‘기쁘다’라는 표현을 반드시 해야 했다. 다음에는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고마운 인사를 하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병원 가는 길에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뭘 생각한 거냐?”며 나무랐다.

아버지는 “‘서운하다’라는 말은 실망할 때 쓰는 말이다. 아들을 바랐던 거냐?”고 물었다. 이어 “서운한 감정은 부질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라며 딸을 낳아 서운해하는 이유가 잘못임을 일일이 설명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기대에서 온 남아 선호사상은 헛된 거다.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딸은 아들보다 약하고, 결혼해 남편의 가족에게 넘어가야 한다는 걱정은 고정관념이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는 거는 사회적 편견이다. 아버지는 “너 같이 지각없는 행동을 하는 아들을 나는 물론이고 세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야단쳤다.

이어 “앞으로 네 딸이 마주칠 세상은 지금 세상과는 다를 거다. 딸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능숙하다. 그런 딸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딸을 낳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비인 네가 할 일이다”라고 했다. 수천 년 전에 선조들도 같은 고민을 해 나온 고사성어라며 ‘요조숙녀(窈窕淑女)’를 제시하면서 “이 성어에 답이 나와 있다”고 했다. 요조숙녀는 고요할 요(窈), 으늑할 조(窕), 맑을 숙(淑), 여자 녀(女)다. 고요하고 맑은 마음씨를 가진 여성, 얌전한 모습과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여성을 뜻한다. 시경(詩經) 관저(關雎) 편에서 유래했다. “꾸륵꾸륵 우는 저구(雎鳩) 새/ 하수(河水)의 모래섬에 있도다/ 요조한 숙녀[窈窕淑女]라야/ 군자(君子)의 좋은 짝이로다.” 저구는 ‘물수리’ 새다. 군자의 짝(逑)으로서 요조숙녀란 깊고 아름답고 그윽한 심성을 가지고 전쟁과 정사에 지친 남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여자를 뜻한다.

아버지는 “선조들이 찾아놓은 해답은 ‘짝을 찾아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딸이 그런 성정을 지니도록 보살펴주는 데 있다”고 의미를 새겼다. 그날 아버지가 강조한 말씀은 내내 지켜왔다. “생명은 존엄하다. 최고의 가치다. 그 아이가 생명을 얻어 너에게 왔다는 것만으로도 네게는 큰 기쁨이다. 그 아이는 짝을 만나 우리 곁을 떠나면 더는 못하게 되니 자라면서 더욱 이쁜 짓을 많이 할 거다. 네가 정작 서운해할 일은 그 아이가 짝을 만나 우리 가족과 헤어지며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환경을 겪어야 하는 고통을 애틋하게 여겨주는 일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시경에도 나와 있듯 그건 사랑이 치유해 줄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도 마찬가지지만, 딸은 짝을 만나야 완전체가 된다. 키우면서 아들과 절대로 차등을 두지 마라. 더 잘해 주려고도 하지 말라. 그게 차등이다. 그 아이가 커서 장차 무슨 일을 할지 우리는 모른다. 내가 손녀를 지켜보니 어린 데도 더할 나위 없이 본능처럼 이쁜 짓만 골라 한다. 하늘이 그 아이에게 그런 재능과 소명을 주었다. 서운해하는 것 자체가 잘못 키우는 아둔한 자세다. 아이의 길을 막지 마라”라고 한번 더 꾸짖으며 “천재로 태어난 아이 둔재로 키우지 마라”고 당부했다. 생명의 존엄성(尊嚴性)은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는다. 존엄성은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이면 손주가 만나는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게 여기도록 서둘러 가르쳐 줘야 할 숭고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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