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야당의 한 의원이 방통위원장을 가리켜 “XXX 씨” 하고 불러 논란이 됐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의원이 대통령을 지칭하며 “○○○ 씨”라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말 ‘씨’를 둘러싼 호칭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임 대통령에게 ‘씨’를 붙여 부르다 SNS를 폐쇄당한 것을 비롯해 멀리 ‘김종필 씨’ 사건에 이르기까지 연원이 깊다. 공통점은 대개 정치권에서 나오는 구설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의 저급한 ‘막말 논란’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
‘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기는 이 말의 출처는 한자 ‘氏’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씨’이지만 막상 정색하고 들여다보면 그 용법이 간단치 않다. 먼저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같은’ 얘기 하나. ‘씨’가 존대어라고 하는 주장 혹은 인식이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 ‘씨’는 아랫사람이나 비슷한 또래한테 붙이면 대접해 부르는 말이지만, 윗사람한테는 붙이지 못한다. 아버지나 선생님을 그리 불렀다간 매우 예의 없는 사람으로 치도곤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씨’의 층위는 상당히 다면적이다. 같은 또래라도 잘 모르는 사이에 붙이면 존중 의미가 담기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약간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말투라 친구 간에 억지로 그리 말하면 오히려 서운해한다. 이런 쓰임새는 모국어 화자라면 어려서부터 몸에 익혀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는 예법이다.
‘씨’의 풀이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서였다. “(성년이 된 사람의 성이나 성명, 이름 아래에 쓰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라고 설명했다. 단서 조항이 붙으면서 비로소 ‘씨’의 온전한 쓰임새가 제시됐다.
하지만 ‘씨’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이후에도 지속됐다. 2017년 한 언론사에서 2면에 “대통령 부인 존칭을 ‘씨’에서 ‘여사’로 바꿉니다”라는 ‘알림’을 크게 냈다. 알림에선 창간 이래 30여 년을 써오던 ‘씨’를 ‘여사’로 바꾸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주목해야 할 곳은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씨’는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붙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다”라고 주장한 대목이다.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호칭을 ‘여사’로 바꾸는 순간에도 ‘씨’가 존대어라는 ‘반쪽 용법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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