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자오쯔양·리커창은 없고 시진핑만 남은 중국

입력 2023-11-29 17:43   수정 2023-11-30 00:31

중국 지식인들은 요즘 술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리커창 전 총리를 종종 소환한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극도로 삼엄한 통제 속에서 황급히 장례를 치른 것에 분개하며 그를 위해 건배한다는 것이다.

리커창은 중국 역대 총리 중 경제에 가장 해박한 사람 중 하나다. 유일하게 경제학을 전공한 총리인 그는 베이징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중국 경제학 논문 최고상까지 받았다. 랴오닝성 성장 때 그가 주중 미국 대사에게 한 얘기는 뜻있는 중국 지식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중국의 경제 통계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믿을 수 없다며 전력 사용량, 철도 화물 수송량, 은행 대출 잔액 등 세 가지 지표로 경제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이 이 세 지표에 가중치를 매겨 만든 게 ‘커창지수’다.

리커창은 시진핑 국가주석 아래서 10년간 묵묵히 2인자로 지냈지만, 때때로 자신의 경제 철학을 숨기지 않았다.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그는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말하며 ‘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시진핑의 슬로건이 ‘공동부유’와 국가 주도의 ‘국진민퇴’라면, 리커창은 덩샤오핑의 ‘선(先)부론’을 추종하고 ‘노점경제’를 칭송하는 ‘민진국퇴론’자였다.

시진핑 입장에서 리커창이 가장 거슬렸을 때는 2020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이었을 거다. 그는 답변 중 “14억 중국 인구 중 6억 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며 집세 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공동부유론 아래 빅테크, 부동산, 사교육까지 때려잡으며 ‘모두 다 어느 정도 잘사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온 시진핑으로선 듣기 싫은 소리다.

시진핑은 3개월 뒤 공산당 기관지를 통해 샤오캉 목표를 기본적으로 실현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지난해 중국 도심 지역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차이는 6.3배로 벌어졌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85년 이후 최대 격차다. 농촌 지역 상·하위 20% 간 빈부 격차는 9배를 넘는다.

중국의 빈부 격차는 요소 투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상 필연적이다. 중국은 성장 유지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44%를 인프라와 부동산, 설비 등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 평균(25%)을 웃도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GDP 대비 투자가 40%를 넘은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 원천은 공짜에 가까운 인민의 돈이다. 연 1.5% 안팎의 정기예금 금리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축률로 형성된 자본을 국유기업과 지방정부가 손쉽게 갖다 쓰면서 철근과 콘크리트에 무모할 정도로 투입하고 있다. 전 사회적 기회비용을 희생하고 얻은 게 빈집, 빈 공항, 빈 도로, 빈 다리인 것이다.

수확체감의 법칙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중국이 1인당 GDP를 1달러 늘리는 데 필요한 투자 규모가 1990년대에는 1인당 3달러, 10년 전에는 5달러 미만이었지만, 이제는 9달러까지 치솟았다고 경제학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다. 공동부유를 내세워 부동산을 사정없이 옥죄더니 올여름 부동산 위기가 터지자 이제는 우리 돈 360조원 규모의 막대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쓸 판이다. 지방 정부 붕괴와 부동산 투자자들의 소요 사태가 두려운 것이다.

공산당이 사회의 주요 자원을 완벽히 통제하는 ‘자유 없는 사회’가 성장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이를 일찌감치 깨달은 사람이 톈안먼 사태 때 실각한 후 평생 가택연금을 당한 중국 공산당 최고의 경제통 자오쯔양 전 총서기다. 그의 회고록 <국가의 죄수>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 “왜 선진국 중에 다른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는가? 한 국가가 근대화를 이루고 현대적인 시장경제, 현대문명을 실현하려면 정치체제는 반드시 의회민주제를 시행해야 한다.”

중국엔 이제 자오쯔양도 리커창도 없다. 시진핑의 위압적 모습과 예스맨들만 있을 뿐이다. 5억 개의 감시카메라가 24시간 작동하는 사회에서 내수와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와 제도 개혁 없이 선진국에 오른 사례는 전무하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꿰뚫은 자오쯔양의 깨달음은 반자유주의적 발상과 기득권의 지대 추구에 막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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