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사태 일파만파…대기업과 PEF '묻지마 동거'의 종말[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3-11-30 14:21  

이 기사는 11월 30일 14:2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저희도 소수지분 투자를 많이 해왔지만 '이런 회사도 투자가 되네' 놀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청구서가 돌아온다고 생각해야겠죠."(한 토종 대형 PEF 대표)

SK그룹이 사모펀드(PEF)에 약속한 콜옵션 이행을 포기하면서 11번가가 초유의 강제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2011년에서 2021년까지 이어졌던 두산그룹과 IMM PE 간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분쟁에 이어 12년만에 PEF가 기업에 콜옵션 및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한 사례가 재현됐다. 드래그얼롱은 기업이 PEF에 투자받으며 약속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거나 기한 내 IPO에 실패하면 PEF가 기업 경영권 지분까지 강제로 매각할 수 있는 조항을 뜻한다.
"믿었던 SK가..." 시장 위축 불가피
자본시장에선 이번 11번가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콜옵션&드래그 얼롱을 포함한 옵션부 투자를 활용해온 SK그룹이 '꼬리자르기'를 택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SK그룹 내 10개 계열사가 조달한 PEF 자금은 9조600억원에 달한다. 11번가(5000억원·H&Q)와 웨이브(2000억원·미래에셋PE 등), SK온(2조4000억원·MBK파트너스 등), SK E&S(3조1000억원·KKR), SK엔무브(1조1000억원·IMM PE), SK에코플랜트(1조원·이음PE 등), SK팜테코(6600억원·브레인) 등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은 그동안 자본시장에서 PEF와 가장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그룹으로 꼽혀왔지만 이번 파장으로 PEF의 자금원인 공제회, 연기금 등 출자자(LP)들의 신뢰를 잃었다. 사실상 추가 조달 문호가 막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11번가 사례는 저금리의 시대 산물이던 옵션부 지분투자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매년 기업가치 상승과 IPO 등 회수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기업들과 PEF 간 '묻지마 동거'가 이어졌지만, 유동성이 마르면서 예상 밖의 청구서가 돌아오면서다.

또 다른 토종 PEF 대표는 "콜옵션 및 드래그얼롱이 위험방지조항으로 완벽히 안전한 조항이라 할 순 없는 게 이번처럼 매각이 안되버리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라며 "수년전만 해도 새마을금고와 친하고, 기업 임원들한테 콜옵션과 드래그얼롱 두 조항만 받아내면 신생PEF도 수천억원 거래를 순식간에 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PEF로부터 에쿼티로 투자금을 조달하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서 부채로 잡히지 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을 보장하면 이사회 구성권 등 경영권을 회사가 그대로 쥘 수 있었기 때문에 연결 재무제표로 실적이 고스란히 잡히는 효과를 봤다. 자본은 조달하면서 기업 외형은 유지하는 효과를 누린 것이다.
IB출신 기업 임원·PEF들의 '유착' 평가도
특히 2021년에서 지난해까지 이어진 유동성 활황기 투자은행(IB) 출신 인사들이 기업에 임원으로 합류하면서 옵션부 투자가 절정에 달했다. PEF들을 줄을 세우면 별다른 수고 없이도 높은 기업가치로 막대한 자본을 유치하는 '착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결국 수년 후 빚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임원 입장에선 자기 임기내 터지지 않으면 기업 내에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가치를 높혀 받으려는 경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때 자본시장의 스타였던 카카오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앵커PE는 2021년 카카오재팬(현 카카오픽코마)에 6000억원을 투자하면서 예정된 계약일보다 앞당겨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네이버웹툰이 모회사로부터 증자를 앞두자 네이버보다 높은 기업가치로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이력'을 남기고 싶어했던 카카오 측 인사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이후 카카오 계열사들의 투자금 회수가 막히면서 앵커PE는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PEF들과 공제회 연기금 등 출자자(LP)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콜옵션&드래그얼롱만 보장받으면 안전한 투자라 여겨져 제대로된 위험분석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기본적인 산업분석도 없이 국내 신생 PEF들도 달려들어 기업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받아주며 거래를 단행했다. 시장에선 11번가의 사례처럼 매각이 어려울 정도로 기업가치가 쪼그라들거나 투자한 회사가 해당 기업 혹은 모회사에 사업적으로 종속돼 분리 매각이 의미 없는 투자들이 향후 위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생 해임달PE의 한화솔루션 중국 닝보법인 투자 등이 분리 매각이 사실상 어려운 사례로 거론된다.

최근 들어 PEF의 소수지분 투자에서도 달라진 분위기 감지되고 있다. 콜옵션과 드래그얼롱 등 위험방지조항에 매몰되기보다 산업분석에 힘을 쏟고 있다. IMM PE의 KT클라우드 사례처럼 일정부분 리픽싱을 활용하거나 배당을 매년 늘려 IPO가 미뤄지는 최악의 경우에도 원금 이상을 회수할 수 있는 방식 등으로 우회를 택하는 운용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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