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산 '전체' 주의가 몰락한 이유

입력 2023-12-04 18:03   수정 2023-12-05 00:37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였던 폴 새뮤얼슨은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분이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하던 1961년, “1984년이 되면 소련 경제가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1980년에도 관점을 그대로 유지했고 시기만 2002년으로 연기했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통령의 고문이신 분이 왜 희대의 헛발질을 했을까? 놀랍게도 소련은 1928년부터 1960년까지 연평균 6%씩 성장했다. 더구나 그 기간엔 대공황과 2차대전이 끼어 있다. 엄청난 ‘지속’ 성장이니 그런 착각도 가능했을 터다.

혁명 직전의 러시아는 ‘막장’ 국가였다. 공업은 낙후됐고 농업 수준도 처참했다. 1차 대전 직전에야 농노제가 실질적으로 종식된, 반쯤 중세였으니 인재도 부족했다. 그렇게 엉망이니 ‘합리적’으로 살짝 조정만 해도 성장이 가능한 상태였다. 적이 인해전술로 몰려오면 안 보고 대충 쏴도 몇 명은 맞듯이 말이다.

그들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공업화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특허 따위 무시하는 막무가내 정신에 엄청난 산업스파이를 동원해 밀어붙이니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깊은 고민이나 심오한 경제학 따위 필요 없었다.

초기엔 자본 부족이 문제였다. 공산국가에 투자해줄 곳이 없으니 농산물을 수출해서 자본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대지주들의 땅을 몰수해서 농민에게 분배한 초기엔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읽지도 못하는 ‘방금 전 농노’들에게 생산성 향상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결국 관리와 실행을 분리하는 포디즘을 도입했다. 농민들을 집단농장 단위로 묶어놓고 ‘조금 배운 당원’들이 작업을 계획하고 관리하며 세금 징수까지 전담했다. 그렇게 체계적으로 농산물을 징발하고 수출해 번 돈으로 공업에 집중 투자했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대충 쐈는데 적의 인해전술 덕에 맞은 꼴이다. 옳다 싶었던 지휘부는 더 짜내고 더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라고 닦달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니 어수선해 보이는 현장의 의견은 반발로만 보였고 그 즉시 잘랐다. 겁에 질린 ‘조금 배운 당원’들은 그 지시를 지나치게 충실히 수행했다.

문제가 터진 곳은 ‘유럽의 빵 바구니’라던 우크라이나였다. 징수가 점점 가혹해지면서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공업화에는 성공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넋이 나갔다. 그래도 굶지는 않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판에 독일이 쳐들어왔고 일부 우크라이나인은 차라리 히틀러가 낫겠다고 판단하고 그편에 섰다. 뒤통수를 맞은 스탈린은 격분했고, 우크라이나를 재탈환했을 때 잔혹한 복수극을 벌였다. 이게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서로를 증오해서 전쟁을 벌이고 러시아가 저놈들은 ‘나치’라고 욕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은 추격에는 유리하지만 그게 마무리되면 부메랑처럼 몰락의 단초로 변신할 수 있다. 적의 인해전술이 끝나면 대충 쏘는 걸 넘어 조준해야 하듯이 추격이 마무리되면 포용적인 방식으로 전환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하지만 일사불란함의 맛을 본 권력자들의 내려놓기? 불가능이다. 소련이 모방했던 포드도 권한 위임을 채택한 제너럴모터스(GM)에 밀려 1940년대에 망할 뻔했다. 소련은 1970년대에, 비슷한 이유로 일본의 성장세도 1990년대에 꺾였다. 추격이 대충 끝난 중국은 또 어떨까?

‘지 잘난 맛’이라도 있어야 살 만하겠지만 내가 제일 똑똑하다는 착각은 가장 위험한 인간 본성이다. ‘지 잘난’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 그걸 내려놓고 포용성을 채택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혁신의 공간이 창출된다. 어수선해 보이는 미국엔 말도 안 되는 시도들이 명멸한다. 그런 걸 참고 용인해주니까 그중에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혁신 기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허튼 주장과 어수선함을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포용성, 미국이 성공하고 소련이 실패한 이유다. 소련? ‘공산’이 슬슬 경제를 죽여볼까 나서는데 일사불란한 ‘전체’가 이미 뇌사로 만들어 놓은 이후였다. 내가 제일 똑똑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만 하면 언젠가 일사불란하게 망할 수 있는 게 세상 이치다. 그걸 잘 모르시는 잘난 리더들을 보면 그들의 몰락 이유, 우리 속에도 여전히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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