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궁정가수 연광철의 한국가곡은, '따뜻한 집밥'처럼 정겹고 흥겨웠다

입력 2023-12-04 19:09   수정 2023-12-05 01:19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오.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소이다.’

지난 3일 일요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이은상이 작사하고 홍난파가 곡을 붙인 가곡 ‘사랑’이 2500여 석의 콘서트홀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모든 걸 태워버릴 만큼 뜨겁게 사랑하자는 노래에 관객은 깊숙이 빠져들었다. 현존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 꼽히는 베이스 연광철(사진)의 ‘한국 가곡 콘서트’는 잊혀진 한국의 정서를 되살려주는 공연이었다. 연광철이 한국 가곡만으로 콘서트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가곡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시작된 장르로 서양의 리트(예술 가곡) 형식에 한국의 시와 시조를 가사로 붙인 것이다. 노년층에게는 익숙하고, 중장년층 가운데서도 즐겨듣는 사람이 많았다. 이날 공연을 찾은 관객 대부분이 어르신이었던 이유다. 추억으로만 간직했던 노래를 되살려주는 반가운 무대였던 것이다.

연광철은 피아노 앞에 단출하게 섰다. 30년 넘게 독일에서 ‘궁정 가수’(캄머쟁어) 칭호를 받을 정도로 유럽 주요 무대에서 30년 이상 활약해온 그였지만 이번 무대는 달랐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의상, 오케스트라 반주도 없이 그저 한 명의 한국인으로 무대 위에 섰다. 공연 시작 직전에 휴대폰 벨소리가 두어 번 울렸지만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넘기면서 오히려 콘서트홀의 불편한 긴장감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는 90여 분 동안 특유의 풍성하고 부드러운 저음으로 다채롭고 세련된 한국적 정서를 그려내며 무대를 채웠다. 공연의 시작은 홍난파 작곡의 ‘사공의 노래’였다.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느낌을 줬다. 그는 비슷한 주제나 시대를 묶은 3개의 곡을 한 세트로 불렀다. 단조의 고독감으로 6·25전쟁의 역사적 상흔을 담은 ‘비목’(장일남), 별빛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별’(이수인), 아름다운 한국어 노랫말로 소박한 정서를 표현한 ‘달무리’(윤이상) 등이 대표적이었다.

연광철은 독일 리트에 비해 단조로운 피아노 파트를 보완하기 위해 반주도 신경 쓴 듯했다. 피아니스트 신미정은 다양한 화성과 루바토(템포를 유연하게 연주)를 활용하며 절제된 부드러움으로 연광철과 호흡을 맞췄다.

앙코르곡으로는 해방 전 작곡된 국민 가곡 ‘그 집 앞’(현제명)과 6·25전쟁 당시 피란지에서 작곡된 ‘이별의 노래’(김성태)로 대미를 장식했다. 독창하기에는 워낙 넓고 울림이 강한 콘서트홀이었던 만큼, 가사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익숙하고 정겨운 선율은 공연을 마치고도 사람들을 흥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는 ‘산해진미’는 아니지만 소화가 잘되는 따뜻한 집밥, 이날 연광철 콘서트는 그런 공연이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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