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감동받을 때가 있다. 극지에 사는 펭귄이 그렇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러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바다엔 바다표범 같은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다. 수백 마리가 작은 빙산의 끝에서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두려움을 떨쳐낸 ‘퍼스트 펭귄’이다. 우왕좌왕하던 다른 펭귄들도 뒤를 따른다. 퍼스트 펭귄은 2008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의 저서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용기 있는 희생’이 화두다. 지도부와 다선 중진 의원들에게 불출마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당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이런 압력이 임계점에 도달해 폭발 직전이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희생 혁신안’은 당 지도부 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혁신위 요구는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에게 ‘퍼스트 펭귄’이 돼 달라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가 할 일이라며 혁신위 요구에 요지부동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의 충격 속에 출범한 혁신위가 지지 여론을 업고 칼을 빼 들었지만, 당내에선 오히려 혁신 동력이 다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김 대표와 중진들의 결단은 제2, 제3의 이수정이 들어올 공간을 열 수 있다. 현재의 지지율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사람을 모아도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할지는 불투명하다. 바다와 강에 먼저 뛰어든 펭귄과 누는 대개 무사히 돌아오거나 강을 건넌다고 한다. 리더의 용기 덕에 펭귄 무리와 누 떼도 생존하고 번성을 이어간다. 김 대표가 보수 여당에 변화를 가져올 퍼스트 펭귄과 누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결단하면 새로운 정치적 활로가 열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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