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훈의 논점과 관점] 김기현, '퍼스트 펭귄'이 돼야

입력 2023-12-05 18:32   수정 2023-12-06 00:14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감동받을 때가 있다. 극지에 사는 펭귄이 그렇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러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바다엔 바다표범 같은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다. 수백 마리가 작은 빙산의 끝에서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두려움을 떨쳐낸 ‘퍼스트 펭귄’이다. 우왕좌왕하던 다른 펭귄들도 뒤를 따른다. 퍼스트 펭귄은 2008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의 저서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생존 위한 리더의 용기가 중요
아프리카 대초원에도 비슷한 존재가 있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 남동쪽에서 풀을 뜯던 누 떼는 건기가 시작되면 물과 먹이를 찾아 북쪽으로 1000㎞ 이상 올라간다. 수만 마리의 대이동이다. 최대 고비는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마라 초원을 가르는 마라강을 건너는 일이다. 강엔 악어 무리가 득실대고, 건너편에선 사자들이 기다린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두머리 누가 용기를 낸다. 이어 수천, 수만 마리가 잇따라 강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전진한다. 생존을 위한 마라강의 대장관은 매년 펼쳐진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용기 있는 희생’이 화두다. 지도부와 다선 중진 의원들에게 불출마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당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이런 압력이 임계점에 도달해 폭발 직전이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희생 혁신안’은 당 지도부 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혁신위 요구는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에게 ‘퍼스트 펭귄’이 돼 달라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가 할 일이라며 혁신위 요구에 요지부동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의 충격 속에 출범한 혁신위가 지지 여론을 업고 칼을 빼 들었지만, 당내에선 오히려 혁신 동력이 다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제2 이수정 들어올 공간 열어야
판사 출신으로 4선에 울산시장을 지낸 김 대표의 고심이 클 것이다. 그는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표가 됐다.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하고 싶어질 터인데, 일각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얘기까지 나오니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먼저 희생해야 다른 움직임을 끌어낼 수 있다. 가뜩이나 인재난을 겪고 있는 여당이 아닌가. 희망이 보여야 좋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에 막 영입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선을 한 수원에 출마를 희망하며 “험지를 택하겠다”고 밝힌 건 울림이 있다. 영입 인재가 ‘양지’를 요구하면, 당은 배려하는 그간의 정치권 모습과 다르다.

김 대표와 중진들의 결단은 제2, 제3의 이수정이 들어올 공간을 열 수 있다. 현재의 지지율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사람을 모아도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할지는 불투명하다. 바다와 강에 먼저 뛰어든 펭귄과 누는 대개 무사히 돌아오거나 강을 건넌다고 한다. 리더의 용기 덕에 펭귄 무리와 누 떼도 생존하고 번성을 이어간다. 김 대표가 보수 여당에 변화를 가져올 퍼스트 펭귄과 누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결단하면 새로운 정치적 활로가 열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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