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이 문장' 때문에…'53억 위약금' 강지환 한숨 돌렸다 [김소연의 엔터비즈]

입력 2024-01-07 10:44   수정 2024-01-07 17:01


소속 연예인이 불의의 상황으로 출연 중이던 작품이나 광고주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끼칠 경우 함께 책임을 진다. "우리 소속 아티스트는 우리가 보증합니다"는 의미를 담아 일반적으로 삽입됐던 '연대보증' 문구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에게 악용되는 사례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강지환과 전 소속사인 A엔터테인먼트사와의 분쟁 역시 첫 단추는 '연대보증' 문구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TV조선 '조선생존기'가 방영되던 중 주연 배우 강지환의 성추문이 불거졌다. 강지환이 자택에서 드라마 외주 제작사 여성 스태프와 함께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잠든 여성들을 성폭행, 성추행했다는 것.

긴급 체포된 강지환은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구속 후 "잘못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말을 바꿨다. 강지환은 법무법인을 통해 "모든 혐의를 인정하며 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큰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잘못에 대한 죗값을 달게 받고 속죄하며 살도록 하겠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강지환은 CCTV영상과 피해자의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하며 피해자 진술이 모순됐다고 주장하며 억울하다고 전했다. 다만 대법원은 강지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강지환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았다.

강지환이 출연하던 '조선생존기'는 20부에서 16부로 축소 방영됐고, 그는 중도 하차했다. 막대한 손해를 입은 드라마 제작사 B사 측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강지환과 드라마 출연 계약서를 작성했던 A사를 상대로 출연료 반환, 위약금,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며 약 63억원의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2022년 9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53억원 채무를 A사와 강지환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범죄로 논란이 된 건 A사가 아닌 강지환이었다. 그럼에도 B사가 강지환 개인이 아닌 A사에게도 배상 책임을 묻고, 법원에서도 '공동 부담'을 판결한 배경에도 연대 보증이 있었다. '조선생존기' 출연 계약서에 '연대약정의무'가 명시된 만큼, A사와 강지환의 공동배상 의무가 있다는 것.

전속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상 표현에는 차이가 있지만 '소속 연예인은 품위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 '매니지먼트사는 해당 연예인을 보호하고 돕는다'는 취지의 명시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는 출연 계약을 할 때에도 이어진다. 계약서에 연대약정의무 관련 문구가 삽입되는 건, "계약 기간 동안 우리 소속 연예인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걸 저희 회사가 보증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함께하겠습니다"의 의미다. 제작사, 광고주 입장에서는 비싼 캐스팅 비용, 제작비까지 쏟아부으며 만든 콘텐츠를 연예인 개인의 리스크로 막대한 손해를 입게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보험을 드는 셈이다.

한 제작 관계자는 "회사 없이 개인으로만 계약을 체결하면 갑자기 잠적을 하거나, 사고가 났을 때 대응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며 "출연료가 적은 단역 배우들도 이왕이면 회사가 있는 배우를 쓰는 이유는 이런 돌발 상황에 대한 리스크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소속사가 먼저 배상하고, 이후 연예인 개인에게 배상을 하는 단계로 이뤄지게 된다. 강지환의 재판에서도 담당 재판부는 "강지환이 A사와 전속계약이 종료된 이후라 전속계약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하면서도, "'조선생존기' 출연 계약서에 '연대약정의무'가 명시된 만큼, A사와 강지환의 공동배상 의무는 여전하고, A사가 배상금을 지불한 후, 강지환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예인 개인의 논란에 소속사가 수억원 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피소되는 건 A사만의 사례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유한건생 측이 배우 서예지와 당시 소속사였던 골드메달리스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서예지 배상액은 0원, 골드메달리스트는 2억2500만원을 배상해야한다고 판결을 해 논란이 됐다.


골드메달리스트 배상 금액은 서예지의 모델료 4억5000만원의 절반에 해당한다. '모델료가 지급된 이후 광고 방영·게재가 취소될 경우 소속사는 모델료의 50%를 현금으로 반환한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랐다.

유한건생은 2020년 7월 서예지와 영양제 모델 계약을 체결했고, 8월 모델료를 지급해 이후 광고가 공개됐다. 하지만 2021년 4월 서예지의 전 연인 가스라이팅 의혹과 학폭 가해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유한건생은 서예지의 소속사에 계약 해제 및 모델료 반환 요구 공문을 보냈으며, 광고도 중단했다. 이후에도 서예지는 학력위조, 스태프 갑질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고, 일부 거짓말 정황까지 불거지면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서예지에겐 금전적인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것에 대해 "의혹의 대상인 학폭, 가스라이팅 등은 모두 계약기간 전의 것이라 서예지와 소속사가 계약을 위반한 게 아니다"고 판단하면서 "계약서에 품위를 해치는 행위로 '학폭'이 언급돼 있지만 이는 행위 예시일 뿐, 원고 주장대로라면 계약 체결 과정에서 과거 위반행위를 밝히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는 헌법상 중대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해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학폭 논란 후 "오해가 풀렸다"며 재기를 엿보는 배우 지수 역시 당시 출연 중이던 KBS 2TV '달이 뜨는 강'에서 하차하면서 발생한 수십억원의 손해를 당시 소속사였던 키이스트가 떠안았다.

지수는 키이스트과 전속계약을 체결한 직후 '달이 뜨는 강'에 출연했지만, 이후 학창시절 동창생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는 폭로 글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게재되기 시작했다. '달이 뜨는 강'은 반사전제작 드라마로, 지수가 하차를 할 당시 이미 90% 이상 촬영이 진행된 상태였다. 결국 대체 배우로 나인우가 발탁돼 재촬영이 진행되면서 추가적인 제작비 지출이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달이 뜨는 강' 제작사인 빅토리콘텐츠는 드라마 종영 후 "재촬영으로 인한 각종 스태프 비용, 장소 및 장비 사용료, 출연료, 미술비 등의 직접 손해를 입었으며 그밖에도 시청률 저하, 해외고객 클레임 제기, 기대매출감소, 회사 이미지 손상 등 상당기간 장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손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키이스트를 상대로 3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키이스트 측은 "갑작스러운 배우 교체로 인한 제작사 및 여러 제작진이 겪는 어려운 상황에 깊이 공감하며, 지수 배우 분량 대체를 위한 추가 촬영분에 소요된 합리적인 비용에 한하여 책임질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고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이런 '연대보증' 조항에 대해 "소속사가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의례적으로 들어가는 문구"라고 해석하며 "그런데 정작 사고친 이들은 배상금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소속사만 갚아야 하는 방식"이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냉정하게 말해 당사자가 갚아야 하는 게 맞지만, 빠른 일처리를 위해 회사가 나서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다만 몇몇 사례는 악의적이기도 하고, 논란의 당사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도 해 눈살이 지푸려진다"고 꼬집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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