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필요할 때 [점프의 기술]

입력 2024-01-10 11:07   수정 2024-01-10 11:08



“너, 혹시 콘텐츠 에디터 해볼래?” 첫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 먼저 커머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동기의 제안이었다.

당시에도 스타트업은 막 떠오르는 트렌드였다. 이직을 고민하던 2016년, 그해 하반기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0%를 돌파했다. 온라인 쇼핑에 있어 모바일이 PC사용을 역전한 때도 이 즈음이다. 모바일 기반 커머스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성장하던 시기였다. 쿠팡, 배달의민족, 컬리, 오늘의 집과 같은 스타트업들은 인재 영입에 바빴고, 영리하고 반짝이던 사람들도 스타트업으로 속속 옮기기 시작했다. 모든 통계와 손가락이 ‘저 쪽이 미래입니다'하고 이정표를 찍어준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언론홍보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라니. 당시에도 언론은 사양산업이란 말은 왕왕 있었다. 하물며 언론이 있어야만 하는 내 업은? ‘미래가 불투명하지 않을까’라는 일할 동력을 잃었던 내게 영감이 샘솟고 트랜드를 주도할 것만 같단 환상이 가득했다.

제안을 한 친구는 지난 4년간 나의 SNS를 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회사가 투자금을 확보하며 팀 헤드가 주변에 센스 좋은 친구 없는지 물어 연락을 주었다고. 당시 작지만 하루에 100여명이 방문하는 일상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고, 예쁜 사진이 좋아 일찌감치 인스타그램을 했다. 커뮤니티 세계의 밈과 짤을 꽤 잘 활용해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없던 시절 적재적소 짤을 보내 짤부자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 내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좋게 봐준다니. 그러니까 나는 평소대로 기록만 했을 뿐인데, 이걸로 이직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일말의 고민 없이 가고 싶다 말했고, 바로 면접과 과제가 잡혔다. 과제는 커머스 상세페이지를 상품의 서사를 담아 스토리텔링하고, 16글자 내외의 카피가 담긴 최대 6장의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그 스타트업은 뮤지컬, 콘서트, 굿즈 등 팬덤소비층이 두터운 한정판 콘텐츠를 판매하는 커머스였다. 고관여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기에 우리가 고객만큼, 그 이상으로 상품에 애정을 가지고 기획했다는 걸 보여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구구절절 너무 상품 설명이 길지는 않게, 3초 안에 고객 마음을 락인(Lock-in)해야 했다.

그래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훑는 방식의 상세페이지가 아닌 모바일 친화적이고, 시각화 된 좌우 스크롤의 카드뉴스 방식으로 상품을 소개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마케팅 방식으로 카드뉴스가 도입되던 시기였지만 상세페이지에 이걸 반영하는 곳은 없었다. 평소 SNS를 즐겨보고 좋아하던 나에게 이 과제는 ‘평소 하던 걸 그대로 하시오'라고 읽혔다.

큰 고민없이 과제를 마쳤고, 면접과 연봉협상에서도 주눅들지 않았다. ‘안되면 말고' 라는 자신감이 오히려 긴장완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어느 면접이나 그렇듯 기대와 우려를 담은 질문이 있었다. 스타트업에 처음 오는데 주어질 자유와 책임을 본인이 오롯이 핸들링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런 질문들이었다. 연봉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제시한 금액, 안되면 말고’ 라는 마음으로 협상했다. 꽤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됐고, 과제와 면접을 끝낸지 2주도 채 안돼 합류가 결정됐다.

너무나 즐겁게 일하고 싶은 회사였기에 합류 전에 워크샵을 다녀왔고, 주말 출근도 기꺼이 즐겼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구성원들과 이전 회사에선 만나보지 못했더 직무의 사람들과 일하는 내모습에 조금은 도취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성원이 빠르게 늘어난다고, 유저수가 빠르게 확보된다고 사업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모객한 고객수 확보와 매출 성장엔 한계가 있었다. 시장이 우리의 수익모델(BM)을 이해하긴 일렀고, 예쁘고 반짝이는 콘텐츠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엔 나의 책임도 있었다. ‘상품 수급이야, 매출이야, 앱로그인 오류야 내가 알아야 할 건 아니니까' 라고 회피하는 마음. 책임은 적고 권한은 가지고픈 덜 여문 자세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1년쯤 지나 회사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런 내게 온 영수증은 권고사직이었고, 곧 회사는 망했다. 지금에서야 이젠 동료와 창업자에 대한 이해와 존경이 앞서지만 당시엔 분노에서 절망, 증오로 퍼지는 심경의 변화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실패는 아니지만 당시엔 꽤나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언제 또 회사의 흥망성쇠를 1년이란 시간동안 경험해볼 수 있을까. 그게 지금이었다면, 나는 더 잃는 것이 많았기에 아집과 미련을 담은 회사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어쩜 꼰대같은 말을 하세요’라고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권하고 싶다.

“가능한 젊을 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경험해보세요”.

하나 더, 동료의 안목이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할 때가 있다. 이직에 ‘나에게 맞는 직무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외로 나의 숨은 재능은 타인이 발견할 때도 있다. 타인의 발견은 무작정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나의 친구, 동료, 상사, 나아가 나의 글과 콘텐츠를 읽고 소비해주는 건너건너 아는사람들에게 계속 힌트의 씨앗을 뿌려둘 것. 언젠가, 누군가 나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 누군가 놀라운 제안을 해줄 것이다.

누군가 그럼 다음 생엔 더 안정적인 대기업 정규직의 삶을 꿈꾸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실패는 가능한 빨리 겪는 게 낫고, 실패의 경험도 자산으로 바잉해주는 귀인은 어딘가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많은 문을 두드려보고, 많은 실패를 해보길 바란다.

정인혜 님은 ‘88 올림픽 봤겠네’의 단골인 88년생으로, IT,스타트업 이야기를 대신 고민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삼은지 12년차. 현재 한 투자사에서 제일 투자답지 않은 일을 맡은 그녀는 글보다 말을 선호하지만 기억은 기록이 되기에 가끔 글을 쓰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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