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상황이다/-사실이다'는 서술부의 군더더기

입력 2024-01-22 10:00   수정 2024-01-22 15:40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를 나타냈다는 소식이 새해 벽두를 술렁이게 했다. 그것도 180억 달러의 큰 적자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을 통해 전해졌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 생긴 일이다. 언론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다각도로 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힘 있게 쓰는 게 뉴스 언어의 특징
“중국은 우리 기업의 생산 기지로서, 중간재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의 수요처로서, 소비 제품의 대량 구매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음극재 소재인 흑연을 비롯해 요소수 수출에 대한 규제 도입까지 손대며 맞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목해야 할 곳은 서술 부분이다. 글쓰기 관점에서 무엇이 눈에 거슬릴까? 기사 문장은 ‘저널리즘 언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저널리즘 언어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힘 있게, 세련되게 드러내는 것이 본령이다. 그렇다면 ‘~사실이다’ ‘~상황이다’는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문장에서 따로 의미를 더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문을 들여다보면 중국이 그동안 이러저러한 역할을 해왔고, 여러 수단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실’을 제시하는 맥락이고 의미 전달은 그것으로써 충분하다. 거기에 다시 ‘사실이다’를 덧붙일 이유도 없고, ‘상황이다’를 부연할 필요도 없다. 그로 인해 글이 더 늘어질 뿐이다. “중국은 …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 맞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쓰면 간결하고 깔끔하다.

서술부에 습관적으로 쓰인 ‘상황이다, 사실이다’는 군더더기일 뿐 아니라 종종 잘못 쓰이기도 한다. ‘상황’은 어떤 일이 되어가는 과정이나 모습, 형편을 뜻한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 있는 일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이 둘은 당연히 서로 다른 말이다. ‘상황’은 추정하고 판단하고 평가해서 하는 것이다. 주로 추상적인 데에 쓰인다. 이에 비해 ‘사실’은 인식하고 드러나는, 실제로 있는 구체적인 것이다. 두 말의 쓰임새가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면서 서술부에선 ‘~상황이다’라고 하는가 하면, ‘상황’을 말하면서 ‘~사실이다’라고 한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에 따라 무심코 붙이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세련된 표현 위해 군더더기 버려야
특히 부사로 쓰는 ‘사실’은 뉴스 언어에서는 기피하는 말이라 주의해야 한다. 간혹 문장 안에서 강세를 주기 위해 쓸 때도 있지만 의미상으론 대부분 군더더기다. “△최근의 많은 하청 근로자 사망 사고는 사실 법 규정이 없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대학은 사실 교육부의 취지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실 퀄컴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냅드래곤 칩을 거의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해온 중요 고객 중 하나다.” 이런 문장에 사용한 ‘사실’은 모두 군더더기다. 그저 습관적으로 붙인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상투어에 불과하다. 글을 늘어지게 할 뿐, 빼고 보면 훨씬 간결해진다.

글쓰기 요령이야 수없이 많지만, ‘힘 있고 세련된 문장’을 쓰는 게 저널리즘 언어의 과제다. ‘힘 있다’는 것은 굳세고, 야무지고, 단단한 것이다. 그러려면 글에 군살이나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세련미는 어색한 것 없이 품위 있고 깔끔하게 잘 다듬어진 데서 느끼는 맛이다. 깔끔하게 다듬어졌다는 것은 매끈하고, 야무지고, 산뜻하다는 뜻이다. 글을 ‘세련되게’ 쓰기 위해서도 군더더기는 없어야 한다. 군더더기는 뭔가 의미 표현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 한 번 더 말하는, 덧칠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늘어지게 하고 표현을 어색하게 만든다. 당연히 깔끔하지도 않다. 세련되지 못한 글에는 군더더기가 많다.

군더더기 처리는 글쓰기의 거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유형은 단어부터 문장, 문단 단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글쓰기 품질은 단어 차원보다 구와 문장 단위의 잉여적 표현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 정작 이들에 대한 인식이 약한 까닭은 대부분 단어 차원의 중복어, 이른바 겹말을 지적하는 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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