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천지 차이"…기묘한 광경으로 눈길 끄는 '눈꽃 성지'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4-02-15 07:05   수정 2024-02-15 11:04



온천과 사케, 화산과 호수의 고장 도호쿠(東北)의 겨울이 깊어지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진다. 눈과 얼음, 그리고 고산목의 질긴 생명력이 만드는 기적 수빙(樹氷·얼음나무)이다. 최대 40m 크기의 얼음뭉치들이 일본에서 가장 깊은 땅 도호쿠의 해발 1500m 산능성이를 빽빽하게 채운다.

인간 세계를 향해 행군하던 괴물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 같이 기묘한 광경. 어느 틈엔가 이 장관에는 '아이스 몬스터(얼음 괴물)'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나하나의 모습이 다 다르고, 날씨와 기온에 따라 시시각각 형상이 변한다.



풍경만 기묘한게 아니다. 수빙 고원을 찾는 이들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시각과 청각의 부조화에 매료된다. 당장이라도 천지가 떠나가도록 괴성을 지르고 몸부림칠 것 같은 수빙이 고원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천지는 고요하다.

저 멀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 소리만 간간이 귀를 할퀼 뿐 얼음괴물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은 자극적이면서 몽환적이다.

수빙은 도호쿠지방 산간지대의 고산목이 얼어 붙으면서 만들어 내는 자연현상이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상고대와 생성 원리는 비슷하지만 외형은 천지 차이다. 상고대가 갸느리고 처연하다면 수빙은 거대하고 위압적이다.



수빙이 세계적으로 드문 건 특수한 기상조건과 식생의 만남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가우면서도 습기를 가득 머금은 시베리아 북서풍이 산간지대의 서쪽 경사면에서 아오모리 분비나무를 만나야만 탄생한다.

아오모리 분비나무는 도호쿠지방의 산간지대에서 볼 수 있는 침엽수다. 높이 40m, 직경 1m 까지 자란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계절풍이 동해를 지나면 수증기를 머금은 눈구름을 만든다. 이 눈구름이 혹한의 도호쿠 산악지대에 도달할 무렵이면 눈과 얼음이 뒤섞인 형태가 된다. 강한 북서풍이 눈과 얼음 가루를 흩뿌리면 아오모리 분비나무의 잎에 얼어붙어 수빙이 된다. 겨울이 깊어지고, 눈이 쌓일수록 수빙의 몸집은 더 우람해진다.



수빙으로의 여행을 서두르는 건 어쩌면 미래에는 볼 수 없는 풍경일 지도 몰라서다. 2013년 병충해가 발생하면서 이 지역의 아오모리 분비나무가 광범위하게 말라죽었다. 지역민들이 재생에 힘쓰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아오모리 분비나무의 수령은 300년. 원래 성장이 느린 나무인데 도호쿠의 가혹한 산악지대에서는 성장이 더 더디다. 1년에 불과 몇 ㎝밖에 자라지 않는 시기도 드물지 않다.

도호쿠에서 가장 유명한 수빙 지대는 야마가타현 자오온천(?王?泉)이다. 자오연봉에서는 해발 1400m 지점부터 아오모리 분비나무가 자생한다.



자오온천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수빙을 감상할 수 있다. 온천마을에서 로프웨이를 두 번 갈아타면 1661m의 산 정상까지 오른다. 로프웨이에서의 18분 동안 하늘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수빙고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산 정상에서는 수빙고원을 산책할 수도 있다. 조명을 밝히는 밤이면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수빙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수빙을 보는 최고의 방법은 스키를 타는 것이다. 자오온천은 일본 최대 규모의 스키장 가운데 하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산 하나가 아니라 산맥을 통째로 깎아 스키장으로 만들었다. 14개의 코스를 연결하기 위한 로프웨이역만 3개다. 3개의 역에서 4개의 로프웨이 노선이 운행한다. 코스와 코스를 잇는 리프트는 32개나 된다.



1661m 자오산초역(?王山頂?)에서부터 최장 10㎞에 걸쳐 스노우파우더를 구름 위를 달리는 듯이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다. 수빙고원 코스는 아이스몬스터 사이를 비집고 8㎞ 동안 활강하는 자오온천스키장의 하이라이트다.



압권은 수빙 사이를 지나는 리프트에 몸을 맡길 때다. 잠자는 거인들의 머리맡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는 듯한 긴장감,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답다. 저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인 채 수빙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보면 잠시 지구가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도호쿠의 겨울 여행, 스키 여행의 맛을 북돋우는 건 꽁꽁 얼어붙은 몸을 단숨에 녹여주는 온천이다. 자오온천은 일본 굴지의 강산성 온천이다. 유황향 가득한 산성수에 몸을 담그면 피부 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싸르르한 통증. 미식가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복어독을 맛보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오를 비롯한 도호쿠 지역의 온천은 물을 탕에 가둬두지 않고 원천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원천 흘려보냄식源泉かけ流し'이 많다. 수질과 위생은 확실하지만 가죽이 벗겨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의 열탕도 상당수다.

그렇다고 찬물을 섞는 실수를 하진 말자. 겨울 도호쿠에서 제일 흔한게 눈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탕에 새하얀 눈을 한가득 집어넣어 온도를 조절한다. 열탕을 최대한 원천에 가깝게 식힐 수 있는 지혜다.

자오온천만 수빙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아오모리현 핫코다산(八甲田山)과 내륙종관철도가 겨울 기차 여행의 멋을 전하는 아키타현 모리요시산(森吉山)에서도 도호쿠 겨울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

◆도호쿠 수빙 보러가는 길


자오온천은 도호쿠지방의 관문이자 최대 도시인 센다이(仙台)에서 차로 1시간, 기차로 1시간30분 거리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국제공항과 센다이국제공항 직항편을 주 7회 매일 운항한다. 겨울철 일본 풍경을 소개하는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긴잔온천(銀山?泉), 천공의 사찰 야마데라(山寺)가 자오온천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다.



센다이는 칠석마쓰리와 소혀구이(규탄), 콩요리 즌다 같이 독특한 문화와 요리로 유명하다. 기차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일본 3대 풍경' 가운데 하나인 마쓰시마(松島)와 전국구 온천 나루코온천(鳴子?泉)이 있어 주변의 볼거리도 훌륭하다.

센다이에서 JR동일본패스(성인 3만엔)를 이용하면 도쿄와 간토, 도호쿠 전 지역의 신칸센과 JR 일반열차를 5일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도호쿠는 온천팬들의 성지로 불릴 만큼 일본인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온천이 널렸다.



'1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탕'이라는 뜻의 센닌부로(千人風呂)로 유명한 아오모리현 스카유(酸ヶ湯), 우유 빛깔의 뽀얀 온천수가 유혹하는 아키타현 쓰루노유(鶴の湯) 등을 센다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먹는 사람이 '이제 그만' 할 때까지 한 입 분량의 소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완코소바와 일본식 냉면, 일본식 자장면 등의 발상지인 '일본 면의 수도' 모리오카(盛岡), 지구상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스포츠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고향 하나마키(花?)는 반나절 코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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