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근로자 없인 공장 못돌려…안전사고 터지면 줄폐업"

입력 2024-01-23 17:56   수정 2024-01-31 16:42


충남 천안에서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P사는 50여 명의 내국인 근로자가 모두 60대 이상이다. 최고령인 75세 근로자도 아직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작업 환경이 열악한 열처리, 주물 분야 등의 뿌리기업은 대부분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로 연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 사고 예방 효과를 내기보다 처벌 사례만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심승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청년들이 오지 않아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사고에 훨씬 취약하다”며 “50인 미만 중소기업은 경영자가 1인 다역에 나서고 있어 사고로 대표가 구속되거나 수사가 장기화하면 경영 공백으로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사고율 높은 고령·외국인 근로자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사고 재해자는 연령별로 40대 1만4683명, 50대 2만2396명, 60세 이상 2만6645명으로 고령층으로 갈수록 많았다. 사고 사망자 수도 40대가 73명, 50대 177명, 60세 이상이 275명이었다. 경기 시흥의 한 제조업체 대표는 “고령자는 숙련도를 갖췄지만 그만큼 자신의 원칙을 고수해 안전교육이나 작업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청년보다 민첩성도 떨어지는 만큼 사고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취업 기피로 고령자의 중소기업 취업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조업에 속한 산업 중 의류(59.8%), 가죽신발(59.6%), 목재(57.3%), 섬유(52.6%) 등의 저위기술 산업은 50세 이상 취업자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인 근로자 사고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사망자를 포함한 재해자는 2019년 7538명에서 2022년엔 8286명으로 늘었다. 한국어 소통 능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외국인력이 대부분 형식적인 사지선다형 문제를 외우는 식으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탓이다. 국내 중소기업에 단순 업무로 취업하러 들어온 외국인력(E9 비자)은 지난해 12만 명에서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어난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장은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비숙련공이어서 현장 업무가 서투른 데다 의사소통도 어려워 사고에 쉽게 노출된다”며 “중대재해법을 도입했을 당시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더 늘어난 상황이라 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계도기간 더 필요해”
중대재해법은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사업장에서 사망자나 2명 이상의 중상자가 나오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지난해 재해 사망사고는 3분기 기준 총 459명으로 이 중 50인 미만 사업장이 58.2%(267명)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고령·외국인 근로자의 잠재적 사고 가능성을 간과한 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밀어붙일 경우 대표 구속에 따른 경영 현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다. 강민정 한국고용정보원 전임연구원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령자 취업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노사 양쪽에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소기업의 근로 환경이 개선될 때까지 계도기간을 더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여전히 준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 교체,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임명, 안전사고 예방 컨설팅 등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김화진 승강기조합 전무는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로 경영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안전사고 예방에 대응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계는 법 시행 유예를 통해 핵심적인 인력 문제를 해소할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노사정이 함께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요구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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