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월세 3000만원 말이 됩니까"…대기업도 짐 쌌다 [현장+]

입력 2024-01-24 07:20   수정 2024-01-24 08:08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졌던 지난 23일. 신촌 대표 상권인 '연세로'(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2번 출구부터 연세대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시민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잰걸음을 놓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해도 품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연세로에도 인파가 적었다. 썰렁한 분위기를 더 차갑게 만드는 것은 연세로 곳곳에 비어있는 상가들 탓도 있었다. 세입자들이 선호한다는 1층은 물론이거니와 대로변에 있는 건물이 통째로 비어있는 곳도 있었다.

신촌 '연세로'는 2000년대까지는 일대에 있는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수요를 흡수하는 신촌의 대표 상권이었다. 술집과 화장품 가게, 옷 가게, 카페 등 놀거리가 많아서다. 하지만 2010년 후반에 들어서는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빈 상가를 찾기 어려웠던 곳에 하나둘 빈 곳이 늘어나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엔 공실이 그대로 방치됐다.

신촌역 2번 출구 앞에서 21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투썸플레이스 1호점'은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다. 신촌에서 약속을 잡으면 으레 "신촌역 투썸 앞에서 만나"라고 말했던 그곳이다. 실제 전체 투썸플레이스 매장 중 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잘 나갔던 곳이다. 투썸플레이스가 철수한 자리는 올리브영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촌역 인근에 있는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엔 보증금 13억원, 월세 7000만~8000만원까지 받던 곳"이라면서 "역세권인 만큼 임대료가 비싸다보니,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버티기엔 사실상 부담이 크지 않았겠느냐"고 귀띔했다.

연세로에서 눈에 띄는 자리에 있던 대표적인 화장품 로드숍 에뛰드하우스 신촌점도 결국 문을 닫았다. 건물 유리창 한편엔 '에뛰드 신촌점 영업 종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 건물은 1층과 2층을 합쳐 약 40평 규모다.

인근에 있는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에뛰드하우스는 해당 자리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해왔다"면서 "보증금 9억원, 월세 2900만원에 임차하고 있었다. 한 자리를 계속 지킨 만큼 건물주 역시 코로나19 등 어려운 시기마다 주변보다 100만~200만원은 낮춰 세를 줬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너무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에뛰드하우스가 나간 이후 다른 대기업에서 해당 자리 임차를 위해 접촉이 있었지만 결국 높은 임대료가 발목을 잡아 성사되지 않았다"며 "현재는 월세를 2500만원까지 낮췄지만, 문의가 적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들이 철수한 곳뿐만 아니라 연세로에는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은 상가가 적잖게 보인다. 연세로 곳곳에 공실이 늘고 있는 것은 결국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세로 내에 있는 빈 상가들은 25~30평 기준 보증금 1억~3억원, 임대료는 3000만원 수준에 형성돼 있다. 또 다른 메인 상권인 명물 거리 역시 10평 기준 보증금 1억원, 월세 700만~800만원 수준이다.

10년 동안 연세로에서 영업한 부동산 공인 중개 대표는 "연세로가 잘 나갔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건물주들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월세를 요구하고 있다"며 "다만 공실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최근엔 세입자가 가격 조정을 원하면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얘기하는 주인들이 꽤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권리금이 없고 가격이 합리적인 공실들은 지금도 계약이 맺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주 수요층인 대학생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한 것도 공실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연세대학교를 재학 중이라는 이모씨(22)는 "밥을 먹을 때 정도 연세로를 찾는 편이지 친구들과 놀 때는 학교 앞보다는 다른 곳을 찾게 된다"며 "놀거리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물 거리에 있는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연세로나 명물 거리에 있는 상가들을 살펴보면 요즘 트렌드를 잘 못 따라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며 "소위 '요즘 뜬다'고 하는 곳들은 새로운 먹거리나 즐길 거리가 있는데 이 상권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떤 업종을 가지고 뛰어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연세로에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탕후루 가게 등은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유행을 따라 업종이 순환해야 상권도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촌 상권의 공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신촌·이대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2%로 집계됐다. 서울 전체 소규모 상가 공실률 5.6%를 크게 웃도는 모양새다. 직전 연도 같은 분기엔 9%였는데 2배 이상 늘었다.

다만 신촌역 상권은 서서히 회복 중이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신촌역 상권의 평균 매출은 1979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만원 늘었다. 점포 수도 1844개로 같은 기간 6개 증가했다. 하지만 유동 인구는 1헥타르(ha)당 19만756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7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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