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한민국 최대 '마인드 스포츠'의 민낯

입력 2024-01-29 18:02   수정 2024-01-30 00:12

“홀덤은 바둑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꺾었던 대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은 지난해 홀덤대회 출전을 앞두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2장의 트럼프(플레잉 카드)로 하는 홀덤 게임은 포커와 달리 운이 개입할 요소가 적고, 학습할수록 승률을 높일 수 있어 해외에선 바둑과 체스에 버금가는 ‘마인드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다. 스포츠전문채널 CBS스포츠가 TV 중계를 하고,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시범종목 채택이 추진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스포츠’인 홀덤이 유독 국내에선 도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방문한 서울 강남의 홀덤펍 대회장과 신림동의 이른바 ‘동전방’은 도심 속 카지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홀덤펍에서 진행되는 대회와 국제대회에선 플레이어의 칩이 떨어진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참가가 불가능한 토너먼트 방식을 채택한다. 자금력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심과 대학가의 불법 홀덤펍에선 칩이 동날 때 언제든 현금을 추가 칩으로 바꿔 무제한 재참가가 가능하다.

판돈 규모도 생각보다 크다. 최소 베팅 단위가 100원이라고 해서 붙은 동전방에선 한 판에 수십만원이 오간다. 특유의 심리전은 없고 자금력으로 밀어붙이는 베팅이 난무했다.

일부 대형 홀덤대회 업체가 운영하는 시드권 생태계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상위 대회 참가권 격인 시드권이 공공연하게 현금으로 거래돼 소규모 홀덤펍에서 열리는 대회도 가열시킨다는 것이다. 시드권 거래를 통해 메이저 토너먼트 대회에서도 도박성 짙은 무제한 베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대형 대회의 하루 정규 상금만 수십억원 수준으로, 베팅과 추가 베팅을 감안하면 매일 100억원 단위의 돈이 오갈 것으로 추정된다. 돈만 놓고 보자면 홀덤이 이미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 스포츠 자리를 꿰찬 셈이다. 현금 불법 교환도 도를 넘어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홀덤업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홀덤을 금지하고, 단속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외국에 비해 국내 도박 규제가 지나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경우 음성화, 불법화가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홀덤이 진정한 마인드 스포츠로서 거듭나기 위해선 현금 게임이 이뤄지는 불법 홀덤펍 단속과 함께 시드권 시스템을 손보는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홀덤은 도박이 아니고, 스포츠’라는 업계(대한스포츠홀덤협회) 주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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