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들고 창업한 청년…역삼동 16층 '건물주' 됐다 [권용훈의 직업 불만족(族)]

입력 2024-02-09 07:36   수정 2024-02-09 09:40



서울 역삼동의 한 16층짜리 빌딩. 중국에 수천만개 화장품을 수출한 김한균 씨는 지난 2017년 이 빌딩을 현금으로 매입했다. 10여년 전 강원 원주시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옥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부터 화장품이 좋아 화장품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완소균이’란 이름으로 인기 블로그를 운영했던 김 씨는 이제 연매출 수천억원대의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됐다.

그는 1985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나왔다. 중학생 때부터 파우치에 화장품을 늘 챙겨 다녔다고 한다. 선크림, 폼클렌징, 스킨, 로션 등이다. 그는 남중, 남고를 나왔다. 남동생이 있을 뿐 누나나 여동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화장품을 쓰기 시작했다. 소망화장품에서 ‘꽃을 든 남자’라는 남성 화장품이 나와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갖가지 화장품을 얼굴에 발라보고, 팩도 하고, 잘 때는 세안제로 꼼꼼히 얼굴을 닦아냈다. 그는 “그때 안 써본 화장품이 없다”며 “수입품까지 찾아 썼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원주 시내에 있는 에뛰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화장품 매장에선 남자라서 안 된다고 할 때 유일하게 받아준 곳이었다.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3년을 일했다. 고등학교 때 화장품에 빠진 그를 보고 어머니가 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오해하셔서 생긴 해프닝"이라며 "어머니께 학원비를 받아 화장품을 사고 피부관리사 학원에 다닌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군에 입대하고 선임들이 물었다. “너는 뭘 잘하니?” 그는 “화장품을 잘 안다” “피부관리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제대 앞둔 선임들의 피부관리사가 됐다. 그는 "선임들에게 팩해주고 피부 상담해주고 화장품 추천해줬다"며 "그때부터 ‘5생활관 에스테틱’이라고 불렸다”고 말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자면.
-안녕하세요. 화장품을 너무 사랑하는 김한균입니다. 향장학을 공부했고 다양한 화장품 자격증도 갖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과 꿈이 많아요. 저의 목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인데요, 좋은거 바르고, 좋은거 먹고, 좋은 운동하고, 좋은 휴식을 취하는 것 이 4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웃음)

▷어쩌다 창업을 꿈꾸게 됐나요.
-20살때 처음으로 화장품 매장에서 일을 해본 경험을 계기로 줄곧 창업을 꿈꿨어요. 제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를 일궈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20년간 매진했으니 나름 만족스럽죠.

▷자본금 200만원으로 화장품 회사를 창업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200만원으로 창업하라고 하면 못해요(웃음). 그때는 무모했지만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있어서 용기는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운데도 불구하고 할 수 있게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점점 무언가 시작도 하기전에 두려워지고 있기는 합니다. 하하.

▷학창시절 굉장히 가난했다고 하던데요.
-너무 가난했죠. 꿈도 없었어요. 그냥 오늘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고, 좋아하는 건 하는 편이라
그 와중에도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어요. 하루에 두세건씩 알바를 해도 뭐든 최선을 다해 일하고 배웠죠.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것 같아요.

▷비교적 힘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셨는데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을 선택했던 이유는 없어요. 그냥 가장 채용되기 쉬웠어요. 힘들어서 다들 피하니까요.그래서 뭐든 어려운 것부터하면 나중에 하는게 좀 쉬운 것 같아요. 작은 일을 하면서도 내 역할에서의 책임감과 반복을 통한 효율성, 시스템을 만드는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뭔가 꾸준히 하는 습관이 있나요.
-여전히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무언가 배우는데 시간을 씁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깊게 파고 들어서 배워요. 예를들어 못하는 일이 있다면 잘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알려고는 하죠. 남에게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요. 그리고 잘하는 것들 혹은 잘해야만 하는 것들은 정말 많은 시간을 내서 배웁니다. 마지막으로 업무 현장에 꼭 가는 편이에요.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출장을 가더라도 현장에 가서 많이 배우고 현장의 공기를 느끼는 걸 즐겨요.

▷주변에 사업적 조언을 해주는 멘토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궁금하면 전문가에게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매순간 순간 옆에 있는 분들이 힘을 많이 주세요. 너무 많은 분들에게 배워서 누구를 딱 멘토로 잡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삶의 영역에서는 홍정욱 회장님께 종종 조언을 구합니다. 질문도 많이 드리고, 요즘 이야기도 전해드려요. 정말 심도있는 답변과 경험들로 조언해주세요. 거래처인 추봉세 회장님께도 많이 여쭙기도 하고요. 저희 국내 유통을 함께 하고 있는 최진환 대표님과도 10년 넘게 유통에 대해 여쭤보고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고 수천억대 매출을 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좋은 중국 파트너분들과 잘 만났었고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타이밍이 좋았어요. 지금이나 그때나 저는 계속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창업한지 1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열정이 넘쳐요. 앞으로도 그럴거고요. 이제는 제가 생각하는 성공의 조건중에 “함께 한자와 함께” 라는 단어가 있거든요.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되는 사람들과 함께 할꺼에요. 그래서 투자부터 매각까지 고려하면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어요. 거의 끝나가고요.

▷2019년도부터는 기업가치가 2조원으로 훌쩍 뛰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2조원은 루머입니다. (웃음). 한때 영업이익이 좋았어요. 한 5년간 매출이 1000~2000억대를 쉽게 넘었으니까요. 막상 잘 되니 처음에는 겁이 나더라고요. 중국에 매출 비중이 너무 높아서 늘 불안한 상황에 투자 제안도 왔지만 제가 잘 몰라서 바보같이 거절했어요. 누가에서 보면 가장 좋을 시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고, 초조하고, 겁나는 시기였어요.

▷벌어둔 돈은 주로 어디에 투자했나요.
-부동산 투자로 회사 내실을 더 많이 다졌어요. 강남에 사옥도 만들고 브랜드가 가고자하는 방향에 도움될 선택들을 조금 많이 했어요. 제주도에 세상에 없던 건축물과 외국의 아날로그 감성 새로운 숙박 공간을 준비하고 있기도 해요. 벌써 3년이 됐고 올해 상반기에 오픈할 예정이에요.

▷사업에 뛰어든 이후 사기를 당한 적은 없었나요.
-하.. 받을돈이 수백억입니다. 최근에도 변호사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냈어요.

▷사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으신건지, 사업적 필요에 의해서 대학원을 다니게 된건지 궁금합니다.
-둘다에요. 열망이야 늘 있어요. 사업적으로도 공부가 필요했죠. 시간이야 늘 부족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면 시간관리는 자동으로 되는 것 같아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고, 그걸 안하는게 시간을 아끼기엔 더 좋은 방법 같아요.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요. 인간관계는 어떻게 관리 하는지.
-휴대폰 번호를 매년 바꿔요. 중요한 분들은 명함이나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있어요. 인간관계는 관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그냥 진심으로 대하고,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봐요.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식없이 지내는 편입니다.

▷어디에 돈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한가요.
아이들과 여행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제가 '얼리 어답터' 성향이라 새로운 신문명(?) 기기를 살 때나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나 장난감 등을 살때가 가장 좋습니다.

▷인기 블로거로 유명했다고 들었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떤 화장품을 검색해봤는데 남자 화장품 후기를 여자 블로거분들이 더 많이 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계기가 된것 같아요.

▷당시에는 화장품에 대한 내용을 남성이 다루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욕 많이 먹었습니다 (웃음). 그래도 그냥 무시하고 했습니다.

▷창업 이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제일 처음에는 광고회사에서 인턴도 여러번 했는데 크게 흥미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에뛰드 하우스라는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일했어요. 이니스프리에서도 계약직으로 1년을 일했는데 이때 계약직 신분이니 망설이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회사의 모든걸 배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화장품 브랜드 인턴십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배웠다고 생각하시나요.
-화장품에 대한 더 구체적인 실무적인 것들, 용어들, 커뮤니케이션 방법들 모두 흡수했어요. 온라인 커머스 시장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업 아이템은 어떻게 찾는 편인가요.
-내 일상이나 라이프 스타일에서 찾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경험하고, 그걸로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없을까를 찾아요. 당장 돈 되는 아이템보다 오랫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편이에요.

▷일주일에 몇 시간 정도 근무하나요.
-아주 많이 일 하는 것 같아요. 일과 휴식에 크게 구분을 두지 않아서. 잠자는 시간 3~4시간 제외하고는 거의 일해요. (웃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당장 뭐부터 할 계획이신가요.
-당장 운동부터 할 것 같아요.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내가 좋아하는 잘하는 무언가를 찾아도 건강하고 체력이 좋아야 하잖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술이나 음식에도 신경 썼을 것 같아요.

▷꿈을 못찾고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한다면.
-못 찾아도 돼요. 없어도 돼요.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모두 찾을 수 있어요. 긍정적으로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봐요.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대(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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