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 재판'에 숨넘어갈 판…현대重, 6년째 노조리스크 살얼음판

입력 2024-02-01 18:20   수정 2024-02-02 02:42

국내 1위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은 6년 넘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와 법리 공방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사내하청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에 교섭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것이었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4월 1심, 그해 11월 2심에서 승소했다. 모두가 곧 끝날 거라고 한 소송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법원이 차일피일 판결을 미뤄서다. 그사이 더불어민주당이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기업들은 더욱더 갈피를 못 잡게 됐다.
○노사 리스크 키운 ‘늦장 재판’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기업 사건은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평가다. 기업 분할, 특허, 인수합병(M&A) 등 전문적인 영역을 살피려면 법관들이 재판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해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통상 4~5년을 기다리는 건 ‘상식 밖’이란 게 산업계의 호소다.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이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산업계에서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계 전반에 ‘노사 리스크’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법원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쟁점이 비슷한 사건에서 정반대 판결이 나온 탓이다. 대리점 택배 운전사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CJ대한통운은 1심(2023년 1월)과 2심(2024년 1월)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기준이 되는 판례를 내지 않은 상황에서 제각각 판결이 나오자 ‘도대체 기업들이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기소도 안 했는데…
늦장 재판은 해당 기업에 ‘범법 기업’, ‘갑질 기업’이란 낙인을 찍는 결과도 낸다. 한화는 2016년 태양광 전지회로 스크린프린터 업체인 SJ이노테크로부터 ‘기술 탈취’ 관련 민·형사 소송을 제기당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한화를 검찰에 고발했다. 형사 소송은 2022년 3월 대법원의 재항고 기각으로 무혐의 종결됐다. 민사에선 1심은 한화의 승소로, 2심은 SJ이노테크의 일부 승소로 마무리됐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6년 넘게 이어진 재판으로 두 회사 모두 피해를 봤다. 한화는 검찰로부터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받았다. 사회에선 ‘갑질 기업’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사업이 지연됐고 해당 업무를 하는 엔지니어도 대부분 퇴사해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며 “선고가 빨리 나왔다면 피해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어지는 재판을 경쟁사가 공격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제약업계에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특허분쟁만 3건이다. 2019년 시작한 대원제약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펠루비 특허분쟁은 1년 넘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복제약 회사와 오리지널 제약사 간 특허분쟁이 장기화할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고 말했다.

최근엔 최고위급 경영자와 연관된 재판 지연 사례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3대 경영석학으로 꼽히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말 그대로 리더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라며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기업 관련 중요 재판은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정수/김진성/곽용희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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