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중산층 상징' 피아노가 사라진다

입력 2024-02-08 16:53   수정 2024-02-09 01:11

1990년대 한국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이던 피아노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버려지고 있다. 피아노에 입문하는 초등학생 수가 저출생 가속화로 줄어든 데다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하면서 피아노가 소음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8일 중고 피아노 업계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 주택가에서는 8만~10만원을 주고 오래된 피아노를 폐기하는 일이 흔하다. 1만5000원 안팎의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배출해도 되지만, 워낙 무거운 탓에 집 현관문 밖으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보니 전문 업체를 불러 처리하는 게 편리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중고 어쿠스틱 피아노는 ‘가성비’로 사랑받았다. 부품을 교체하고 적절한 조율을 거치면 새 피아노보다 훨씬 저렴한 50만~100만원 수준에 꽤 좋은 피아노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고 피아노를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 보니 대부분의 피아노가 버려지고 있다. 경기 용인시의 중고 피아노 업체 세븐피아노를 운영하는 전국남 대표는 “최근 2년 사이 수거되는 피아노 중 대부분은 다시 팔리지 않고 바로 폐기장으로 간다”며 “폐기되는 피아노가 몇 배로 늘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 경기가 나빠져 중국으로 피아노를 수출하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피아노 수요가 줄어드는 1차적인 원인은 저출산이다. 피아노에 입문하는 학생이 워낙 적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3년 417만 명이던 전국 초등학생 수는 올해 258만3000명, 2029년 170만 명대로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피아노 강사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면서 단체로 원생을 받는 학원보다는 개인 레슨을 학생과 선생님 모두 선호하는 추세”라며 “레슨생과 협의해 연습실을 빌릴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피아노 소리로 층간소음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수요 감소 원인이다.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을 둔 학부모 A씨는 “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툼을 겪다가 아이가 어릴 때 쓰던 어쿠스틱 피아노를 팔고, 전자 피아노로 바꿨지만 여전히 항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 전공 학생들마저 전자 피아노로 레슨과 연습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최근 수거되는 피아노의 ‘수명’이 다한 점도 한몫하고 있다. 아파트촌 음악학원 및 가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아노는 20~30년 된 경우가 대다수고, 핵심 부품인 ‘음향판’이 망가져 재사용이 불가능한 게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 대표는 “1990년대 영창, 삼익 등 국내 피아노 브랜드가 전국 대도시에 대리점을 두고 하루에 300대씩 판매하던 피아노가 30여 년이 지나 버려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수리를 거쳐 재유통되는 중고 피아노조차 일본산과 경쟁해야 한다. 이우희 포리피아노 대표는 “폐업하는 학원의 피아노들은 사용 횟수가 많이 누적돼 대부분 전량 폐기된다”며 “야마하나 가와이 등 일본 고급 피아노 브랜드 중고품이 그나마 팔리는 편”이라고 했다.

악기업계는 휴대성과 성능을 동시에 갖춘 디지털 피아노 시장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악기업체 관계자는 “음악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 피아노 일변도에서 최근엔 전자음악과 보컬 등으로 다양화된 면이 크고, 그러다 보니 어쿠스틱 피아노 수요는 점차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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