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오장군의 거문고

입력 2024-02-08 16:57   수정 2024-02-09 00:42

나에게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후배가 적지 않다. 이름하여 지음(知音). 그중 한 명인 오경자는 전통음악은 물론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다. 씩씩한 용맹스러움을 거문고 소리로 담아내는 오경자는 마치 고구려 장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문고 음역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가끔 아쟁과 첼로 혹은 높은 음역의 가야금 악보를 내놔도, 그만의 특성을 살려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실력자다.

최근 그의 개인 연습실을 방문했다. 여러 사진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었는데, 그중 얼핏 정체 모를 한 장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심하게 상한 엄지손가락 사진이었다. 거문고의 특성상 왼손 엄지의 사용이 매우 중요한데, 손톱만 빼면 거의 성한 살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굳은살이 박이고 또 박인 엄지손가락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인 양 켜켜이 살결 무늬를 드러낸 작은 절벽 같았다.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손이 아파져 왔다. 얼마나 아팠을까?

오래전 부전공으로 거문고를 만졌던 시절, 거문고는 사람을 혹사하기 위해 탄생한 악기 같다고 느꼈다. 모든 음의 기본을 삼아야 하는 왼손의 약지는 연주를 시작한 지 1~2분도 안 돼 마비될 정도였고, 굵은 거문고 줄을 비비며 연주해야 하는 엄지는 얼마나 아팠던가. 술대를 잡는 오른손의 검지와 장지 사이에 굳은살이 박여서 두 손가락을 나란히 하기도 어려웠고, 바닥에 앉아서 연주하기에 무릎 관절이 늘 아팠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오경자가 정말 살을 깎아가며 연습했고 오늘날의 실력을 얼마나 혹독한 자기 수련과 연습을 통해 이뤄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결코 투자 없는 성공은 없다는 진리를 떠올리게 됐다. 이렇듯 고통을 이겨내는 연습을 반복해야만 나올 수 있는 소리, 그는 그렇게 자기 살이 닳도록 문지르며 유려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광주가 고향인 오경자의 거문고 소리는 특별하다. 투박한데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데 간드러지지 않는다. 거문고 성음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다. 거문고 소리의 정석이다. 그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것이 용서될 정도로 속이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이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뜨거운 열정을 보이는 후배의 음악이 있기까지 그저 잘한다고 감탄만 했을 뿐, 손을 본 적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이라는 꽃을 피우려는, 수많은 예인의 노력이 쌓여 오늘날 우리의 소리가 이어져 왔음에 새삼 숙연한 감사의 마음이 솟는다. 이제 난 그를 오장군이라 부르고 싶다. 오장군의 거문고 소리를 비롯한 많은 예인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다 많은 이에게 떨치기 위해 내 일에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임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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