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버세요?" 질문에 절반이 '무응답'…위기의 국가 통계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입력 2024-02-15 15:01   수정 2024-02-16 14:16


가계의 소득과 지출 등을 파악하는 가계동향조사의 무응답 비중이 지난해 절반 수준까지 높아졌다. 고용 상황을 파악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복지의 기초 자료가 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등도 비슷한 추세다. 통계조사의 응답률이 하락하면서 국가 통계의 신뢰성 문제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 묻자 열명 중 네다섯명 "무응답"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동향조사의 단위 무응답률은 44.9%(6월 기준)를 기록했다. 전년 동월 37.7%에서 7.2%포인트 높아지면서 처음으로 무응답률이 40% 위로 올라섰다.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표본 열명 중 네다섯명 정도가 자신의 얼마를 벌고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공개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무응답은 조사에 불응했거나, 불성실한 응답으로 통계 활용이 불가능한 경우를 합한 것이다. 30% 안팎이던 가계동향조사 무응답률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35%로 뛰었다. 대면 활동이 일부 재개된 2021년 32.0%로 낮아졌지만 이후 큰 폭의 오름세가 이어졌다.

고용·사회·복지 등 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주관적인 건강상태, 교육 훈련 정도, 복지 수준, 생활환경 등을 묻는 사회조사는 2023년 무응답률이 31.6%로 나타났다. 1년 전인 2022년(30.4%) 30%대를 돌파한 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와 경제활동인구조사, 지역별고용조사 등도 무응답률이 두자릿수로 높아졌다.

무응답 증가는 신뢰성 높은 통계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된다. 다양한 대상을 조사하지 못하고 나름의 추정방식을 도입해 응답을 대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인실 전 통계청장은 "응답률 저하가 계속 이어지면 조사통계 전반의 신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응답에 따른 보상을 늘리고 행정 통계를 연계해 보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에 있어도 안열리는 문
통계조사원들은 이같은 무응답 증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조사원 A씨는 "분명히 집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는데 초인종을 누르고 통계 조사를 하러 왔다고 하니 TV 음량을 줄이고 아무런 대답을 안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른 조사원은 "대뜸 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놨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개인주의 성향이 확산하면서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진데다 코로나19 이후 낯선 사람과의 대면을 꺼리는 문화가 나타나면서 무응답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통계조사 과정에서 무응답자가 특히 많은 지역은 고소득 가구가 몰려있는 지역이다. 최근 응답률이 55%로 하락한 가계동향조사는 수도권 가구의 응답률이 현저히 낮다.

통계청이 2021년 실태분석을 한 결과 수도권의 경우 조사 설계상 한 가구가 4600가구를 대표하도록 돼있지만 응답이 저조해 결과적으로는 7600가구를 대표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가구의 응답이 전체를 대표해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통계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단독주택 가구, 2인 가구 및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에서는 모집단에 비해 높은 응답률이 나타났다.

고용상황을 묻는 경제활동인구조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통계청은 품질진단 보고서에서 "전통적으로 강남·서초·송파구 등이 불응률이 높았다"며 "지역적 특성이 표본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청 기준으로 보면 수도권을 조사하는 경인지방통계청의 불응률은 약 12%로 전국 평균(10% 안팎)보다 높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1인 가구와 맞벌이 증가로 방문 조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또 소득과 지출 및 개인의 생활양식, 취업·실업 고용 형태 등 조사항목이 민감해 불응률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통계 무응답 증가는 조사결과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작년 말 '2022회계연도 결산심사보고서'를 통해 "최근 5년 새 주요 조사 통계의 응답 거절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며 "불응률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조사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실 전 통계청장도 "통계의 신뢰를 담보하는 '적정 응답률' 수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덧붙였다.
과태료 규정 있지만
조사 통계 무응답률이 늘어나는 데에는 과태료가 사실상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통계청 등 국가가 조사하는 통계는 통계법상 응답할 의무가 있다. 통계법에 따르면 '통계 응답자는 질문 또는 자료제출 등의 요구를 받은 때에는 신뢰성 있는 통계가 작성될 수 있도록 조사사항에 대해 성실히 응답해야한다'고 돼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엔 불응 횟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과태료 조항은 1962년 통계법 제정 때부터 명시(당시는 벌금)됐지만 개인이나 가구에게 물린 적은 없었다. 2019년 가계동향조사 응답률이 저조하게 나타나자 통계청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시대에 뒤 떨어진 행정조치"라고 질책한 후 방침을 거둬들인 적도 있다. 다만 사업체에 대해서는 지난 2012년 등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가 있다.
답례품 늘리고 조사기법 고도화 추진
통계청도 응답률 하락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매년 응답자에게 제공하는 조사 답례품 수준을 높이고 있다. 농어가경제조사는 조사 답례 상품권 금액이 올해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상향됐다. 작년엔 지역별 고용조사의 답례품을 5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리고, 답례품을 주지 않던 농림어업조사에도 1만원 지급을 시작했다. 통계조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캠페인도 벌였다.

무응답자를 어떻게 대체해야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계개발원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무응답 대체방안' 용역을 통해 기존 답변을 통해 무응답 항목을 최소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통계청은 무응답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통계개발원이 제시한 방법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영국 통계청도 공표 중단
이같은 통계의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통계청은 고용통계 응답률이 추락하자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중국은 국가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이미 퍼진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 최고치 경신을 앞두고 발표를 중단해 논란이 됐다.

한국은행 런던사무소가 최근 내놓은 현지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통계청은 작년 10월부터 고용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취업시간대별, 고용형태별, 성별, 산업별 취업자 수 등 세부 통계는 발표를 하지 않고, 전체 실업률, 고용률, 경제활동참가율만 '실험적 통계' 형식으로 공개했다. 국세청의 급여소득자료와 실업급여 통계를 통해 보완한 자료라는 점을 명시하고, '국가통계 인증' 표시도 삭제했다.

영국 통계청이 물가와 통화정책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고용통계 발표를 중단한 것은 고용조사의 응답률이 급전직하해서다. 2014년 50% 안팎이던 영국의 고용조사 응답률은 2020년 팬데믹을 겪은 후 30% 밑으로 떨어졌다. 작년 말에는 14.6%까지 하락했다.

거절의 유형도 더 명확해졌다. 과거엔 집에 없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응답 자체를 거절하거나 표본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강력한 거부가 많아졌다.

영국 통계청은 작년 10월 이후 무응답자에 대한 재접촉 절차를 마련하고, 응답자 보상을 강화하는 등 고용통계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새로운 방식의 고용통계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청년 실업률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지난해 6월 16∼24세 청년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직후였다. 7월 실업률 수치가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자 발표를 중단한 것으로 평가됐다.

올들어 청년 실업률 통계 발표가 재개됐지만 재학생을 제외하는 등 집계 방식을 바꿔 실업률 수준을 크게 낮췄다. 새로운 방식으로 집계한 중국의 작년 청년 실업률은 14.9%로, 마지막 통계 발표치인 21.3%에 비해 6.4%포인트 낮았다. 국가가 발표하는 통계를 대놓고 '마사지'한 셈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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