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을 예정이었던 A씨는 16일 병원으로부터 수술 일정이 변경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해 병원 측에서 수술을 절반 넘게 줄이면서다. 빅5 병원 근무 의사의 39%에 이르는 전공의들이 오는 20일부터 병원을 떠나기로 하자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막기 위한 의사 파업이 본격화하자 시민단체들은 “국민생명을 내팽개치는 집단 진료 거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공의들이 일손을 놓고 의료 현장을 떠나면 교수들이 업무를 대신해야 한다. 전공의보다 연령대가 높은 교수들이 낮 시간 외래 진료를 본 뒤 늦은 밤 야근까지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병원들이 파업 전부터 수술·입원 등의 일정 조정에 나선 배경이다.
실제 이날 중증 암 환자가 모인 인터넷 카페 등엔 ‘서울대병원 수술 일정이 무한정 연기됐다’, ‘빅5 병원에서 항암치료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글이 잇따랐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환자 피해가 현실화한 것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전공의 1만3535명 중 빅5 병원 소속은 20%에 이른다. 이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다른 병원 전공의들도 연쇄 파업에 나서는 등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엔 전공의들이 파업에 들어간 지 18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이들은 “과로노동으로 번아웃에 내몰리는 전공의들이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며 “전공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달라면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의사 수를 늘리면 전공의 노동 환경이 자연히 개선될 것이란 취지다.
선진국들도 급격한 고령화 등에 대비해 20여 년간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렸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나라는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설명이다.
앞서 대한간호협회도 의대 증원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화재 현장을 떠나는 소방관, 범죄 현장을 떠나는 경찰관을 상상할 수 있느냐”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은 어떤 순간에도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가 상당히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예외를 두지 않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이지현/오현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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