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냄새 진동하는 와중에 사랑 고백…원초적이며 심오하고 유머러스하다

입력 2024-02-18 17:44   수정 2024-02-19 00:36


이미지는 늘 현실을 배신해 왔다. 이미지는 늘 인물을 (클로즈업 기법과 같이) 더 아름답게 비추거나, 존재하는 공간을 환상화하는 것으로 관객을 현혹해 왔다. 혹은 이미지는 내레이션으로 전달되는 사실과 반대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결말을 지음으로써 영화 속 이야기를 배반하기도 한다. 1944년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이 그랬던 것처럼.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신작 ‘오키쿠와 세계’의 이미지 역시 그러하다. 정말 더럽게 (문자 그대로) 가난한 두 청년과 그들이 마주하는 공동주택의 군상들은 오물과 악취가 가득한 곳에 존재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한없이 아름답고 고상한 흑백 이미지로 전달된다. 이미지는 끊임없이 지리멸렬한 현실을 배반하고, 관객은 이런 이미지의 폭동에 매료된다.

영화는 19세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구로키 하루 분)는 복수의 결투에서 아버지를 잃는다.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목소리를 잃게 되고 세상과의 연을 끊어버린다. 영화의 또 다른 중심인물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 분)와 쓰지(간 이치로 분)는 에도의 할렘과도 같은 하층민의 공동주택을 돌며 세입자들의 인분을 사고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들이다. 야스케는 언젠가 이야기꾼으로 무대에 설 꿈으로, 쓰지는 오키쿠를 향한 마음을 전달할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세계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순환 경제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사카모토 감독은 분뇨업자라는 캐릭터를 통해, 음식과 분뇨의 순환과정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실로 과감하고도 철학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지만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똥 푸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설정보다 그 소재를 철저히 배신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이다. 흑백 이미지로 전달되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들 즉 작은 집들, 지붕, 강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과 그 너머의 논과 밭. <오키쿠와 세계> 속 인간의 공간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영화 속에서 인분만큼이나 중요한 레퍼런스는 ‘글’이다. 오키쿠는 사원에서 글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목소리를 잃고 나서 수업을 중단해버린다. 어린 승려들과 읽고 쓸 줄 모르는 쓰지의 회유로 오키쿠는 다시 붓을 든다. 영화에서 ‘글’은 오키쿠가 말을 할 수 없음에도 사람들과, 문명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동시에 문맹이던 쓰지가 오키쿠에게 글을 배우면서 비로소 그는 작은 에도를 넘어 ‘세계’의 존재를 발견한다.

서장과 종장을 제외하고 영화는 7개의 짧은 챕터(러닝타임 90분)로 구성된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제작비를 구하기 힘들어 이야기의 한 조각(?)씩 만들다 보니 현재의 형태가 됐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톤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에도 곳곳의 인분을 주워 모으면서도 서로에게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오키쿠가 쓰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상황에서도 악취를 참지 못하는 대목 등 영화는 소소하고 인간적인 에피소드로 챕터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서사와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재미와 쾌락의 과잉 세계에서 <오키쿠와 세계>는 분명 심오하고도 유머러스한, 영리하면서도 원초적인 영화적 ‘세계’를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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