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 첫날, 혼돈의 '빅5 병원'…속 타는 환자들 [현장+]

입력 2024-02-20 14:13   수정 2024-02-20 14:14


전날 '빅5' 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 1000명 이상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업무를 중단한 가운데, 의료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각 병원에서는 접수창구에서부터 환자들의 불만이 잇따르는 상황이 연출됐고,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발걸음을 돌려야만 하는 이들의 원성이 쏟아져나왔다.
전공의 없는 '빅5 병원' 가보니…환자 걱정만 늘었다
이날 오전 9시께 찾은 서울아산병원 외래·입·퇴원 접수처 앞 대기실은 파업 예고 소식을 접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일찍이 긴 대기 줄을 형성해 혼잡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외래 진료는 큰 차질 없이 기존대로 진행되는듯했으나, 예정된 수술 일정이 다소 밀릴 것으로 예상돼 환자들의 걱정은 커진 모습이었다.

3월 중순 직장암 수술이 예정돼있다는 60대 남모 씨는 "오늘 자기공명영상 진단기(MRI) 검사 등을 받고 수술 일정을 확정하는 날인데, 전공의 파업 소식을 듣고 마음 졸이며 병원에 방문했다"며 "혹여나 수술을 못 받을까 불안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을 앓고 있는 60대 최모 씨도 "오늘 외래 진료는 따로 밀리거나 지연된 것 없이 진행될 거라고 전해 들었다"라면서도 "다만 올해 폐 이식 수술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앞선 수술이 연기되면 순차적으로 받아야 하는 수술도 밀릴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전공의 부재 속 기약 없는 기다림에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갔다. 보호자 대기석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아내가 오전에 정형외과에서 외래 진료를 보다가 갑자기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조짐이 보였다"며 "의료진이 일단 급한 대로 응급실로 가서 진료받아보라고 협진 소견서를 작성해줬는데, 막상 응급실에 가보니 전공의가 부족해 진료가 많이 지연되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씁쓸해했다.

예정된 수술 중 일부가 연기된 건 사실이지만, 응급 및 중증도를 고려해 긴급 수술에 대해선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게 병원 측의 입장이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한경닷컴에 "지난주부터 유선 연락으로 일부 수술 예정 환자에게 입원과 수술 연기 통보를 하고 있다"면서도 "병원은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지방서 올라온 암 환자도 '날벼락'…"빠른 정상화 필요" 호소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한다. 이들은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 상태를 점검하는 등 중요한 업무를 맡은 만큼, 자리를 비울 경우 새로운 환자를 받거나 수술을 진행하는 데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에선 하루 평균 200∼220건의 수술이 진행되는데, 전날에만 해도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다. 이 병원은 이날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상황은 중증 및 위급한 환자들이 다수 속한 암 수술 병동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다.

위암에서 폐암으로 전이가 된 40대 조카를 데리고 경남 진주에서 찾은 50대 부부는 갑작스러운 수술 지연 통보를 받았다며, 3일간 입원하기로 한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의료진에 왜 수술이 늦어졌냐고 물으니 그냥 '늦어졌으니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했다"며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소아암 말기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부모는 "이 병원을 계속 다니던 사람인데 전날 2주 후에 다시 수술받으러 오라고 통보받았다"며 "뇌 쪽에 문제가 생겨서 암이 커져 버렸는데 수술도 못하고 진통제만 맞았다. 의사한테 이런 일을 항의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수술 후 정기 검진을 받는 암 환자들도 불안감이 커졌다고 호소했다.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혈액종양내과를 방문하고 있다는 90세 노인은 "의사 증원한다고 할 때마다 파업 과정을 다 겪은 사람 입장에선 몇 년 동안 더 이래야 하나 싶다"며 "언젠가 증원 문제는 겪어야 할 일이라고 보는데, 이런 식이면 환자들만 불안하다"고 푸념했다.

백혈병을 앓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아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에 찾은 부모는 "전공의들이 시술하는데 항암치료를 하는 전공의가 빠지는 바람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며 "빨리 정상화되어야 하는데 우리 애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여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의협이 총파업 등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자,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집행부를 상대로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위반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1년 이하 면허정지 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때 형법상 업무방해죄 또는 교사·방조범으로 판단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복지부가 전날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총 64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병원 소속 전공의의 55%에 달하는 규모다. 다만 각 병원은 이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10개 주요 수련병원 현장을 확인한 결과, 19일 오후 10시 기준 1091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 중 757명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이미 주말께부터 출근하지 않아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진 인원은 29명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나머지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받았음에도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복지부는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 면허 취소 등 행정처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세린/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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