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위기의 재외공관

입력 2024-02-21 17:30   수정 2024-02-22 00:23

재외공관만큼 불신의 대상인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일 보듯 하더라’는 사연이 널려 있다. 긴급 사태 시 한국 대사관 대신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면 법률·의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여행 팁도 공유된다. 공관 직원들에게는 ‘칼퇴근 종결자’라는 오명까지 붙어 있다. 탈북자가 전화하니 ‘담당자 퇴근했다’며 끊더라는 식의 스토리가 심심찮은 탓이다.

낯뜨거운 일이 불거질 때마다 외교부는 과장과 오해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엊그제 나온 감사원 감사 결과는 그 해명과 판이하다. 뉴욕 총영사관은 국민 24명의 구금 사실을 알면서 한 명도 면회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사카 총영사관은 아예 관할구역의 수감자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핵심 업무로 꼽히는 ‘기업 지원’도 엉망이었다. 2년 전 요소수 사태 때는 중국 정부의 수출제한 공고도 보고하지 않았다. 기관장 전용 차량을 도둑맞을 정도로 공관 운영도 낙제점이었다.

총체적 난맥상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과 기름 같은 인적 구성이다. 대사관 116개, 총영사관 46개 등 188개 재외공관 직원은 외교부 소속과 다른 부처에서 파견나온 주재관으로 대별된다. 외교관은 특유의 폐쇄적인 특권의식에 젖어 있고, 주재관은 몇 년 쉬러 나와 업무 긴장감이 낮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다. 여기에 권력을 등에 업고 날아온 낙하산까지 끼어들면서 ‘해외에서 아군끼리 싸우다 자멸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재외공관은 5367명이 외교부 예산3조53억원의 22.8%인 6853억원을 사용하는 거대 기구다. 하지만 ‘국민이 아니라 공무원을 위한 조직’이라는 의구심이 광범위하다. 대사로 부임한 뒤 “교민들 가까이하면 골치 아프니 만나지 말라는 직원 조언을 수없이 들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다.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재난에서 재외국민을 피신시키고, 청년들의 현지 취업을 도왔다는 미담도 넘친다. 하지만 언제나 미꾸라지 몇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외공관의 수출 전진기지화를 선언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이들과 절연하지 못하면 허언일 뿐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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