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에 돈만 잔뜩 보이고 사람이 안 보여 뭉쳤다는 작가

입력 2024-02-26 18:22   수정 2024-02-27 00:19


“세속적 물욕과 공명심에 얽매여서는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함이고, 자유롭지 못한 정신 상태에서 어떻게 심금을 울리는 예술작품이 생겨나겠는가.”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화백(1915~1982)은 ‘유희삼매’라는 제목의 글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성공의 척도가 되고, 미술 속 인간에 대한 고민이 점차 옅어지던 세태에 대한 지적이었다. 김 화백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유와 용기와 사랑을 겸한 ‘휴매니티’가 있다면 예술이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김종영 화백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4인의 작가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에 모였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새해 첫 전시로 마련한 김을·김주호·김진열·서용선의 단체전 ‘용(龍·用·勇)’이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미술에서 인간이 사라졌다’는 한 원로작가의 한탄을 듣고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며 “작품의 환금성(用)이 주목받는 시대에도 용기(勇) 있게 휴머니즘을 추구한 작가들에게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일상을 담은 그림일기부터 테라코타, 대형 조각까지. 네 명의 작가가 선택한 작업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성공 신화 이면에 외면받곤 했던 이들, 바로 ‘인간’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아기자기한 쪽은 김을 작가(69)다.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자화상’과 가족사를 소재로 한 ‘혈류도’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와 조각은 공방에서 만들어낸 듯 손가방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다. 지금도 전시회를 열 때면 전시장 한편에 작은 책상을 마련해놓고 작업을 이어간다고 한다.

김진열 작가(71)는 쓸모를 다해 버려진 폐품을 이용해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화폭에 담는다.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아낙네, 폐지를 줍는 노인, 시장에서 좁쌀 한 되를 파는 상인이 그의 ‘뮤즈’다. 입체 회화 ‘그물질’(2023)은 전남 여수에서 40㎞가량 떨어진 연도 바닷가에 쓸려온 녹슨 양철을 염산 처리해 제작됐다.

‘해학의 작가’ 김주호(74)의 모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테라코타로 제작한 그의 인물상 속 대부분의 사람은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30명의 인간 군상을 담은 ‘별별30나한상’(2023)은 창령사지 오백나한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해학미를 토대로 힘겨운 삶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민초들의 바람을 담았다.

네 명의 작가 중 가장 대중적인 서용선(72)은 대학교수 정년을 10년 남기고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경기 양평으로 들어갔다. ‘도시풍경’ ‘역사화’ ‘자화상’ 연작으로 작업을 이어온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맞닿아 살아가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에선 채색한 대형 나무 인물상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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